국내외서 자료수집 해온 조카 유승흠 의료지원재단 이사장

“1919년 美 한인자유대회 참가
맹호군 창설·특수공작원 활동도
기업·교육인이자 열혈 애국자”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뿐 아니라 기업경영을 통해 애국에 참여했던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의 조카인 유승흠(74·사진)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은 28일 “삼촌이 살아계실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은 ‘국민 행복 증진, 국가 발전’이었다”며 “자본주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기업 경영은 늘 시민을 우선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75년부터 수십 년간 미국, 한국 등에서 어렵게 모은 유일한 박사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유일한 정신의 행로’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유 이사장에게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는 감회는 남다르다. 유 이사장은 “많은 사람이 기업인·교육자로 유일한 박사를 인식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주권 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유일한 박사는 1919년 4월 14일부터 임시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미국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용만 등과 함께 참여했다. 나흘 동안 열린 대회에서 유일한 박사는 결의문 ‘한국민의 목적과 열망’ 초안을 작성하고 대회 마지막 날 직접 낭독했다.

이후 유일한 박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부의 측면 지원기관인 한국친우회의 일원으로 3·1 운동의 효과를 선전하고 한국독립운동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또 재미한인국방경위대(맹호군) 창설에 주역으로 활동했다. 미육군전략처(OSS)의 한국인 무장독립운동을 위한 냅코 작전(NAPKO Project)의 특수공작원으로서 제1조 조장을 맡았다. 다방면의 외교·무장투쟁 공로가 인정돼 정부는 1995년 유일한 박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유 이사장은 “한인자유대회 당시 삼촌의 나이가 24세로 참석자 중 가장 어렸다”며 “그는 어린 나이로 미국에 가 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던 애국자였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를 지낸 유 이사장은 한국재활재단 설립이사, 유한재단 이사, 유한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공익사업에 참여해왔다. 현재도 한국의료지원재단에서 치료비가 없는 아픈 이웃들을 돕고 있다. 그는 “유일한 박사의 가르침에 따라 어렸을 때부터 공익사업은 기본적으로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의사가 되자 유일한 박사는 ‘의사 돼서 돈 벌 생각하지 말아라’고 했었다”고 회상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도 유일한 박사의 삶을 기리기 위해 그가 설립한 유한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바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대학 방문 이유에 대해 “유일한 박사의 삶이 ‘다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국가 대한민국’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윤명진 기자 jinie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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