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재, 박연폭포 길이 두배늘려
새가 내려다보는 조감법 동원
실제 풍경 재해석한 ‘마음그림’
단원, 水墨의 미묘한농담 살려
옥순봉 봄 풍경 섬세하게 묘사
사진 찍은듯 그려내 ‘눈 그림’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과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는 조선 후기 영·정조 시절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큰 흐름을 함께 이끌었다. 그들의 진경산수화는 송·명대 관념적 형식의 화풍을 따라 하던 이전의 조선 화풍과 확실히 선을 그었다.
조선 중기 산수인물화의 대가로 불렸던 이경윤(李慶胤·1545∼1611) 같은 이도 작품 ‘관폭도’를 보면 ‘고사 속 인물이 명상하는 장면’ 등 ‘관념산수’에 몰입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겸재와 단원은 ‘관념 속 이상향’이 아니라 조선의 아름다운 산하를 화폭 속에 재현해냈다. 그러나 겸재와 단원은 진경산수화라는 큰 그늘 아래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이 바라보는 조선의 ‘진경(眞景)’은 사뭇 달랐다.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는 최근 펴낸 ‘이야기 한국미술사’(마로니에북스)에서 조선 전기와 중기의 ‘관념적 산수’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로 진화할 때 “겸재와 단원이 진경산수의 새 흐름을 이끌면서도 ‘걸어갔던 방향’은 달랐다”는 주장을 실경 비교 사진과 함께 담아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실제 경관을 그대로 담아내기보다 과장과 변형을 이용해 대상을 표현해냈다.
‘금강전도’ ‘인왕제색도’와 함께 겸재의 3대 명작으로 꼽히는 ‘박연폭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웅장한 폭포수의 여름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을 보면 겸재의 대부분 작품이 그렇듯 실제 모습과 큰 차이가 있다. 그림에서는 폭포가 수직으로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스듬히 꺾여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폭포의 길이를 2배가량 늘린 덕분에 박연폭포가 자아내는 우레같은 굉음의 감동이 극대화됐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겸재는 여러 작품에 하늘에서 새가 내려다보는 ‘조감법’까지 동원, 산수를 바라보는 여러 시점을 조합하고 합성해 작품을 완성, 실경과 다른 산수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반면에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과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 화풍을 계승한 단원은 전 세대인 겸재와 구별되는 새로운 감각의 진경산수화를 선보였다. 1796년 완성된 작품 ‘옥순봉’을 보자. 작품은 수묵의 미묘한 농담변화를 활용해 파릇해지는 봄 풍경까지 섬세하게 살려낸 명작이다. 그런데 단원의 옥순봉 그림은 사진 속 실제 옥순봉을 빼닮았다. 카메라 앵글에 잡힌 풍경과 그림이 거의 일치한다. 이태호 교수는 이를 두고 대상을 변형해 그리는 겸재의 작품은 ‘마음 그림’, 대상을 닮게 그리는 단원의 작품은 ‘눈 그림’이라고 분류했다.
겸재의 그림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풍경에 대한 그의 변형은 현실 정치에서 성리학적 이상향을 찾으려 했던 문인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 집권 세력인 서인 - 노론계는 조선의 명승을 통해 이상을 꿈꾸었다. 겸재와 달리 사실적 화법의 ‘김홍도식 진경산수화’는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등 당시 새로 부상한 실사구시 학파를 따른 회화 형식이다.
이 교수는 “겸재에서 단원으로 이어지는 화풍은 바로크풍에서 사실주의로 진화한 서구 미술사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서구에서 사실주의 이후 더 현장 밀착형의 ‘인상주의’가 드러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추사의 ‘세한도’처럼 실제보다 관념 속의 산수화로 흘러, 미술사적으로 보면 퇴행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저서 ‘이야기 한국미술사’는 고전인 곰브리치 작 ‘서양미술사’와 비견된다. 이 교수는 방대한 우리 미술사를 구석기 시대부터 우리가 사는 당대미술까지 40년 가까이 일일이 발품을 팔아 확인된 내용을 중심으로 총망라해 보여준다. 이 같은 시도는 우리 미술사 저작을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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