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제 팔아 돈 번 새클러형제
유명 미술관에 거액 후원 논란
원래 미술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생각과 거침없는 행동이 특징이다. 그래서 ‘꼰대’들은 그들을 충동적이며 버릇없는 족속이라고 폄훼한다. 하지만 그들의 예술은 원래 자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때로는 반체제적이며, 저항적이다. 특히 현대미술의 경우 미술은 정치적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사회적 발언을 담은 작품들이 양산된다. 물론 일부 영악한 작가는 정치적인 입장이나 발언을 통해 ‘개념 있는 양’ 자신을 포장해 작가적 입지를 다지려고 얄팍하게 행동하지만, 글쎄 그것이 그렇게 오래가는 것을 보진 못했다.
무명의 예술가들의 예술을 향한 뜨거운 가슴은 현실이라는 척박한 상황을 만나 그들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따라서 더더욱 저항적이며 세상을 고발하는 작품들이 성하고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때론 작가들이 스튜디오를 뛰쳐나와 행동으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1980년대 언더문화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낸 골딘(Nan Goldin, 1953∼)은 요즘 가장 바쁜 작가다. 작품 때문이 아니라 미술관에 기부된 사회공헌을 가장한 부패한 돈과 싸우느라 그렇다. 영국의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이 준비하는 개인전도 마다하고 싸움에 열중이다.
그녀의 싸움은 다름 아닌 부정하고 부패한 돈을 기부금으로 받아온 미술관들과의 싸움이다. 미술관은 비영리 공공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술관은 국공립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법인체로 기업과 개인 그리고 사회로부터 기부금을 받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따라서 국가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기부하는 돈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고 기부금을 장려한다. 애초에 운영 자체가 투명해 블랙리스트 같은 것이 존재할 여지조차 없다. 그런데 낸 골딘을 화나게 한 것은 정당하게 벌지 않은 ‘나쁜 돈’이 시민들의 정신문화를 고양하는 미술관에 유입된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자선을 가장한 위선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4년 베를린에 거주하던 시절, 손목의 통증을 가라앉힐 목적으로 진통제를 사용했다가 점점 빠져들어 중독의 지경에 이르렀던 낸 골딘은 그 원인을 제공한 진통제 옥시콘틴(OxyContin)을 제조한 퍼듀사(Purdue Pharma)와 이를 설립한 몰티머(Mortimer, 1916∼2010), 레이먼드 새클러(Raymond Sackler, 1920∼2017) 형제와 그의 가족들의 기부금을 거부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메트, 테이트, 영국왕립미술학교 미술관, 루브르, 베를린 유대 박물관, 영국 박물관의 새클러 윙, 하버드대의 아시아전문 아서 M 새클러 박물관, 워싱턴의 아서 M 새클러 미술관, 런던의 현대미술을 견인하는 서펜타인 갤러리도 후원자의 이름을 따 새클러 갤러리가 됐다.
하지만 나쁜 돈은 새클러가에 한하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만 해저 유정에서 기름이 흘러나와 환경을 오염시키고 시추선 폭발사고로 노동자들이 사망한 사고의 주범 영국국영석유회사(BP)의 기부금을 거부하라는 운동이나 최루탄을 생산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휘트니 미술관의 이사회 부의장인 칸덜스(Warren B Kanders, 1958∼)의 사임을 요구하는 일이 진행 중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기부를 받을 때 나쁜 돈을 걸러내기 위해 나름 윤리적 기금 모금 정책 및 자선 목표에 부합하는지 내부 검토를 거친다. 하지만 어떻게 번 돈인지 표시가 없다는 점은 유혹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모든 악의 근원은 돈일까. 아니면 나쁜 돈을 번 사람일까.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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