忽然一夜淸香發 散作乾坤萬里春(홀연일야청향발 산작건곤만리춘)

갑자기 하룻밤에 맑은 향기 피어나니 천지 만 리에 봄을 흩뿌리는구나.

원나라 말기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면(王冕)이 지은 ‘백매(白梅)’의 후반부다. 왕면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시와 그림을 좋아해 소를 돌보는 중에도 꽃을 그리거나 때로는 몰래 주변의 학당에 가서 귀를 기울이곤 했다. 뒤에 집을 떠나 사찰에서 지닐 때는 불상 무릎에 앉아 불상을 비추는 등불 아래서 글을 읽었다고 한다. 훗날 학문을 성취했지만,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때로는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곤 했다.

시인은 특히 매화를 사랑해 자신의 집을 매화옥이라 부르고 스스로 매화옥주(梅花屋主)라 칭했다. 시의 전반부에선 백매가 얼음과 눈이 덮인 숲속에 있으므로 세상 속에 뒤섞여 있는 복숭아·자두꽃과 같지 않음을 칭송하고, 후반부에선 하룻밤 새 피어난 그 맑은 향기가 온 세상에 봄을 부르는 것을 찬미하고 있다. 백매는 하얀 색깔 때문에 눈에 덮여 있으면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 피어 맑은 향기가 퍼져 나오는 순간 봄의 이른 전령으로서 존재감이 부각된다. 옛 시인들이 특히 설중매를 좋아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일제의 강점에 항거하며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독립 선언을 한 지도 벌써 100년이 흘렀다. 그 뒤 자주적으로 독립을 찾지 못하고 분단된 채 광복을 맞이했고, 동족상잔도 겪었다. 냉전이 사라진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한반도는 여전히 겨울 속에 있다.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봄소식이 오는 듯싶더니 다시 오리무중이 됐다. 눈에 덮인 차가운 숲이지만 분명 그 속에 하얀 매화가 숨어 있을 터이니 하루빨리 그 맑은 향기가 피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다.

상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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