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2019학년 입학식 축사
“보시다시피 저는 장애인입니다. 나이 마흔네 살에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습니다. 책 한 장도 스스로 넘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 입 앞에 있는 빨간 도구로 컴퓨터를 조작하고 이것으로 전자문서의 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세어보니 사고 이후 12년 동안 제가 읽은 책이 800권에 이르더군요.”
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9학년도 입학식에서 이상묵(57·사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신입생들 앞에 섰다. 이 교수는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2006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사막에서 지질조사를 하던 중 차량 전복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한때 호흡이 정지되는 상황까지 겪었던 그는 6개월 만에 기적처럼 다시 강단으로 복귀했다. 장애를 딛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왕성한 강의와 연구 활동을 펼치는 그를 두고 학생들은 ‘강단의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전동 휠체어에 묶여 있는 그의 모습이 마치 루게릭병을 앓던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연상시킨다며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 교수에게 이날 소감을 묻자 “사실 38년 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누가 입학 축사를 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나중에 기억하는 신입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비(非)정상 학생”이라 답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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