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은 핵 폐기 대상과 제재 해제 범위에서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그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포괄적 핵 신고와 로드맵 작성 합의를 목표로 하되 동결의 대가로 제재 완화 및 동맹 약화 등 과도한 양보를 해선 안 된다는 견해가 다수였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신고와 동결조차도 뛰어넘어, 영변 밖의 핵시설을 대상에 추가하고 폐기로 직접 돌입하겠는 전략을 택했다. 추가적인 대규모 핵시설의 존재 자체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인정했는지조차도 명확하지 않지만, 북측이 영변 시설 폐기만으로 중요한 제재 완화를 얻어내려 한 것은 지난해 6월 회담에서 얻은 잘못된 자신감과 오판의 결과다.
합의 없이 끝난 이번 정상회담은 분명 실패한 회담이다. 그러나 이번에 명징하게 드러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한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핵무기와 핵물질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며, 결론적으로 이것이 북한 입장의 한계선이다. 또한, 양측은 상대방의 큰 양보에 초점을 맞춰 애초부터 스몰 딜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도 발견됐다. 다행히 미국은 제재가 강력한 대북 압박 도구로 작동함을 확인하고 강한 제재의 고삐를 현 상태로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의 말을 액면가대로 받아들인다면 북한이 완화를 요구한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에는 석탄, 광물, 철, 철광석, 섬유, 기계류, 해산물, 농산물 등의 수출 전면 금지와 원유 및 정유 제품 수입 제한, 노동자 송출 금지 등이 포함된다. 이는 무기 금수 등을 빼고는 대북 제재의 핵심이다. 전면적 대북 제재 해제와 관련한 진실 게임이 어떻든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이번 회담의 결렬로 인해 톱다운식 협상의 한계와 트럼프 대통령의 자질 부족에 대한 비판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지만, 목표와 원칙이 훼손되는 나쁜 합의를 거부하고 무합의를 택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이번 실패의 책임과 비난은 진정한 비핵화를 거부하는 김정은에게 돌아가야 한다. 서둘러 빈손으로 돌아가는 김정은의 지도력이 손상됐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니 귀국 후 이를 만회키 위해 내부적으로 혹시 어떤 잔인한 조치들이 뒤따를 건지도 지켜볼 일이다.
양측 모두 조속한 시일 내 협상 재개 의사를 비쳤지만, 결렬의 충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입장을 마련하고 실무진 간 마주 앉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며, 3차 정상회담은 지금으로선 요원하다. 이번 결과로 당장 정세가 경색되진 않을 것이나, 북한의 핵 불포기 입장이 변하지 않는 가운데 앞으로 점차 미·북 간 협상 모멘텀 상실과 안보 상황 악화 가능성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요구되나 미·중 간 무역 협상을 포함한 패권 다툼이 걸림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요청을 단순 만남 중재를 넘어 실질 문제 진전을 촉진하는 역할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新)한반도체제와 평화협력공동체는 구상의 선량한 취지를 넘어서, 그것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와 어떤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를 중요한 테마로 삼아야 한다. 북한은 실패 만회의 돌파구를 남측에서 찾을 것이므로 정부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검토함에 있어 이번 회담의 결렬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하고 남북관계 진전만 우선시하는 섣부른 단독 질주로 비치거나 비핵화 노력과 엇박자를 낸다면 국제 공조와 동맹에 부작용만 야기할 뿐임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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