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중 해군에 자원 입대
1963년 두산그룹 말단사원 입사


겸손과 경청을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재계에서 ‘침묵의 거인’으로 불린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박 명예회장은 생전에 과묵한 성품으로 유명했다. 말을 아낀 이유가 있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기 뜻은 간결하게 전달했다.

검소와 겸손은 박 명예회장의 몸에 밴 덕목이었다. 1932년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늘 겸손해야 한다”는 부친의 가르침 속에 자라서 “내가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집안이 큰 포목상을 했는데도 유치원에 다닐 때 무명옷을 색이 바랠 때까지 입었고, 고무신도 닳아서 물이 샐 때까지 신었다고 한다.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뜻의 ‘수분가화(守分家和)’를 가훈으로 삼기도 했다. 그의 이런 성정 때문에 1951년 6·25전쟁 중에 해군에 자원입대했던 참전 용사라는 것도 뒤늦게 알려져, 2014년에야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박 명예회장은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 6기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라는 부친 뜻에 따른 것이었다. 1963년 두산그룹에 들어올 때도 동양맥주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의 첫 업무는 공장 청소와 맥주병 씻기였다.

1981년 두산그룹 회장 취임 후로는 선진 경영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혁신에 앞장섰다.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했다. 1995년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위해 33개 계열사를 20개로 과감히 재편하고, 2000년대 한국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해 산업재 중심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신을 이끄는 등 두산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다.유족으로는 아들 정원(두산그룹 회장)·지원(두산중공업 회장), 딸 혜원(두산매거진 부회장) 등 2남 1녀가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7일.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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