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부모들이 깜짝 출연
당신의 자녀들에 축하 영상
졸업생의 눈엔 감격의 눈물
그 모습을 본 나도 눈시울이
“두려움이 에너지” 수상 소감
간단명료한 삶의 지혜 ‘선물’
우수가 지나더니 캠퍼스에 따뜻한 봄기운이 돈다. 본부동 주변에 심은 수양매화에선 꽃망울이 터지려 한다. 이제 곧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캠퍼스는 매화 향기로 가득 찰 것이다. 수양매화는 수양버들과 매화를 접목한 귀한 품종이라, 그 모습은 마치 춤추는 것 같고, 그 향기는 무척이나 그윽하다.
그날은 오전엔 정년퇴임식, 오후에는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부지런히 본부동 2층 회의실로 올라간다. 정년퇴임식장이다. 이미 학생들과 교수, 직원들로 꽉 찼다. 올해 정년퇴임하는 교수님은 세 분이다. 사회자가 영상을 통해 재밌는 사진을 보여준다. 학교 임용 당시의 모습이 담긴 ‘비포’ 사진과 정년퇴임 직전의 모습이 담긴 ‘애프터’ 사진이 동시에 화면에 나온다. 그 순간,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느새 머리 색이 검정에서 은빛으로 바뀌었고, 머리숱은 현저히 줄었다. 수십 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예술가를 키우기 위해 그 젊고 빛나던 시절들이 쏜살같이 지나간 것이다.
의례적인 식순이 끝나고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이다. 교수 대표가 엄청나게 큰 상자를 들고나온다. ‘과연 저 큰 상자에 무슨 선물이 들어 있을까?’ 모두 궁금해한다. 여기저기서 선물 상자를 열어보라고 재촉해댄다. 포장을 뜯으니 상자 안에서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나온다. 이제부턴 여행을 다니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메시지가 담긴 선물이다. 가방을 받아든 교수님들은 마냥 기쁜 표정을 짓는다. 대개 정년퇴임식은 엄숙하고 무겁기 마련인데 오늘 퇴임식은 떠나는 사람이나 남아 있는 사람이나 모두 즐겁다.
오후가 되자 졸업식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캠퍼스 곳곳에 졸업 축하 펼침막이 걸린다. 어떤 동아리에서는 중앙계단에 커다란 음식상을 차려놓는다.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후배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려는 것이다. 그 뜻이 참으로 갸륵하다. 봉산탈춤 동아리에서는 사자탈을 쓰고 신나게 춤추며 흥을 돋운다. 이를 구경하는 학부모와 졸업생들의 표정이 마냥 기쁘다. 졸업식이 진행될 예장홀에 들어선다. 조금 일찍 입장했는데도 앉을 자리가 없다. 좌석은 이미 만석이다. 다른 대학 졸업식은 졸업생들이 참석하지 않아 쓸쓸하게 진행한다고 하는데 우리 대학 졸업식은 졸업생과 학부모들로 정말 입추의 여지가 없다.
음악이 잔잔히 흐른다. 단상 앞에는 레드 카펫이 깔려 있고, 스포트라이트가 단상을 밝게 비춘다. 정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카메라가 이런저런 모습을 잡으며 중계하고 있다. 식이 시작되고, 의례적인 순서가 지나간다. 졸업생을 위한 축하 영상을 구경하는 시간이다. 졸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의 앞날을 축하하며 들려주는 의례적인 영상 메시지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졸업생 부모님들이 직접 출연해 당신의 딸과 아들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들려주는 영상이다.
어느 졸업생 부모님의 차례다. “그렇게나 네가 들어가고 싶어 하던 서울예대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와 아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예술을 하겠다고 밤을 꼬박 새워가며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고 애처로웠는지 모른다. 이제 어느덧 대학 공부를 마치고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네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고 한다. 그때, 카메라가 그 부모님의 아들인 졸업생을 찾아 얼굴을 비춰준다. 아들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다. 부모님이 영상에 나올 줄은 미처 몰랐던 것 같다. 학교가 비밀스럽게 연출한 것이다. 졸업생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그 모습을 본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제 졸업식의 마지막 순서다. ‘삶의 빛’ 상을 시상하는 시간이다. 이 상은 졸업생들이 앞으로 험난한 예술의 길을 걸어갈 때 삶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졸업 선배 중에서 예술적 성취와 사회적 성취가 뚜렷한 동문을 선정해 시상하는 명예로운 상이다. 그동안 작가 김은숙·신경숙, 연기자 전도연, 영화감독 이명세, 디자이너 이상봉, 연기자 신구 등의 동문이 수상했다. 올해는 실내디자인을 전공한 김봉진 동문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김 동문은 ‘배달의민족’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푸드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이다. 김 동문이 마이크 앞에 서더니 묻는다. “우리 민족이 어떠한 민족입니까?” 모두 웃으면서 큰소리로 “배달의 민족이요!” 하고 답한다. 김 동문은 말을 이어 나간다.
“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국가부도가 나던 해에 두려운 마음으로 사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바로 에너지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모든 일의 동기는 두려움으로 가득 찰 때 일어났습니다. 지금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습니다만 현재 저의 두려움은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두려움입니다. 그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제 좌우명은 ‘이번 고비가 지나면 다음 고비가 온다’입니다. 여러분은 두려움이 에너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소감 발표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갖고 사회에 나가는 졸업생들에게 간단명료한 삶의 지혜를 선물해 준 것이다. 사회자가 졸업식 종료를 선언한다. 그러자 커다란 유리 벽을 가렸던 검은 커튼이 활짝 열리며 찬란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천장에서는 형형색색의 꽃비가 내린다. 교수님들은 양쪽에 서서 퇴장하는 졸업생들을 일일이 안아준다. 환한 햇빛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나가는 졸업생들의 뒷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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