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 중인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버린 영국 여왕 앤과 그의 권력을 둘러싼 두 여인의 욕망을 그린 영화로, 앤 역을 맡은 배우 올리비아 콜먼에게 제91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실제로도 17명의 자식을 잃었다는 앤(1702∼1714년 재위)의 지독하게 슬픈 내면은 여러 장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데 궁 정원의 연주 장면이 그중 하나다. 나이가 어린 현악기 연주자들이 정원에 앉아 연주하는 모습을 창문을 통해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앤은 이내 당장 멈추라고 울부짖으며 그들을 쫓아버린다. 티 없이 맑은 아름다움이 앤에게는 받아들이기 버거웠던 것이다.
지난 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내한 연주(사진)는 마치 앤이 들었을 법한 음악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모차르트 교향곡 17번으로 시작해 29번으로 끝맺은 프로그램을 통해 마치 ‘이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듯했다. 모차르트의 자유로운 개성, 다정하고 섬세한 선율, 재기와 활력을 넉넉하게 펼쳐 보였다. 짙게 펴 바른 듯한 현의 질감과 관악기의 소박한 음색이 어우러지며 ‘예쁜’ 소리를 빚어냈다. 큰 키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은 지휘봉을 크게 휘저으며 작품이 지닌 정서를 끌어올렸다. 반면 이날 협연자로 나선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데예바의 해석은 조금 달랐다. 만약 앤이 아브데예바의 연주를 들었다면 그를 붙잡고 목 놓아 울었을지 모른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에서 아브데예바는 지나치리만큼 신중한 접근을 보였다. 깔끔한 터치, 과하지 않은 템포와 페달링은 오케스트라와 어색함 없이 어우러졌지만 그는 결코 음악에 도취하거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쪽이 아니었다. 음악에 대한 겸손한 태도, 깊은 사유가 그의 연주에 묻어 있었다. 꾸밈음 같은 장식적인 부분이나 오케스트라와 힘겨루기를 하는 솔로 대목에서도 정갈한 맛을 자아냈는데, 이 때문에 풍부한 사운드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그의 연주가 건조하다고 여겼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더욱 흥미로웠다. 절제된 표현의 틀 안에서 빚어내는 어둑한 분위기는 듣는 이가 폭넓게 사유하도록 안내했다. 아브데예바의 쇼팽 협주곡 2번을 가을에 비유한다면 단풍이 곱게 물든 멋진 풍경이 아닌 바스락하게 말라버린 낙엽이 쓸쓸함을 자아내는 계절에 가깝다. 1악장 종결부로 치달으며 그의 우아한 매력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으며 단정한 스케일은 때때로 짜릿함을 자아냈다. 다만 3악장의 춤곡 리듬에서조차 역동적이고 풍부한 음악적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조금 서운했다.
아브데예바와 비슷한 연령대에 그만큼 성숙하고 진중한 아티스트는 드물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아브데예바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좋은 솔리스트다. 포펜은 아브데예바의 해석을 사려 깊게 배려하면서도 연주 전체에 추진력을 실었다. 포펜이 2014년부터 음악감독으로 몸담고 있는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고전미와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자랑하는데, 이날 무대에서는 박자를 다루는 법이나 다이내믹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세심하게 고민했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아브데예바의 앙코르는 쇼팽 ‘마주르카’ Op. 59-3,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앙코르곡은 하이든 교향곡 44번 3악장. 이들은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조금은 걷힌 서울 하늘에 어울리는 충만한 밤을 선사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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