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지정학’국내 첫 번역
2차대전뒤 냉전 등 내다보며
“美, 유라시아 균형 만들어야”


“지리는 한 국가의 정책 형성에서 가장 기본적인 결정 요소를 이룬다. 왜냐하면 지리는 가장 영속적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왕조는 바뀌어도 역사를 통해 영속되는 수많은 투쟁의 근원은 ‘지리’에 있다.”

이렇게 갈파했던 이는 미국의 지정학 이론가인 니콜라스 스파이크먼(Nicholas J. Spykman·1893~1944·오른쪽 사진)이다. 그의 지정학(地政學·geopolitics) 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가 예일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묶은 책 ‘평화의 지정학’(The Geography of the Peace·사진)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돼 나왔다. 한국지정학연구원이 번역한 이 책의 원전은 스파이크먼이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동료 교수와 제자들이 출간한 것이다. 번역서 제목에서 ‘지리(Geography)’를 ‘지정학’이라고 한 것은, 스파이크먼이 그런 뜻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20년 미국으로 이주했던 스파이크먼은 버클리대, 예일대 등에서 공부하고 강의하며 지리와 지정학을 강조하는 국제관계 연구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는 지리적 환경으로 지구 공간을 분할하고 그 가치를 평가했다. 즉, 중앙대륙 평원인 ‘하트랜드’, 대륙과 해양 세력의 완충지대인 ‘림랜드’, 도서국을 비롯해 유라시아 인근의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하는 ‘근해대륙’으로 나눴다. 스파이크먼은 림랜드를 통제해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봤고, 이는 미국이 유라시아 지역에 세력균형을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스파이크먼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이 태평양에서 패해 미국의 보호를 받을 것을 예견했으며, 향후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와 중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이후의 냉전 시대를 정확히 내다봤던 그는 대소(對蘇) 봉쇄정책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대부였다.

스파이크먼의 유작인 ‘평화의 지정학’은 지정학의 고전으로서 가치가 높다. 강성학 한국지정학연구원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은 “독자들은 무거운 저서가 아닌 짧고 간결한 강의노트를 통해 지정학 이론의 진수를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공동 번역자인 김연지, 모준영, 오세정 박사는 각각 해제를 통해 이 책이 오늘날의 세계 외교 질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특히 강대국의 패권 전쟁에 끼여 있는 한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성찰을 시사하고 있다. 그 성찰의 바탕은, 현실주의 패러다임에서 국제 관계를 바라봤던 스파이크먼이 남겼던 말들이다. “개개의 국가들은 힘의 지위를 보전하고 증진시키는 것을 외교정책의 주요 목표로 해야 한다.” “힘은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도,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수단이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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