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형님의 이름과 명예를 되찾게 돼 가슴이 뿌듯합니다.”

1950년 입대한 지 69년 만인 12일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형의 유해와 유품을 받아든 한병열(79) 씨는 “오랜 이별이 있었지만 형을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게 해준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며 “형님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정부와 국군 장병들에게도 고맙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한 씨의 형인 고 한병구 일병의 유품이 이날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단장 허욱구)을 통해 병열 씨 등 유가족에게 전달된 것. 유해발굴감식단이 전달한 유품에는 132번째 ‘호국의 영웅’인 한 일병의 녹슨 버클(사진)과 단추, 전투화 밑창이 포함됐고, 신원확인통지서와 국방부 장관 위로패도 함께였다.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 일병은 1950년 12월 29일 18세의 어린 나이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종사촌인 장명수(당시 18세) 옹과 함께 자원입대했다. 한 일병은 대구 1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국군 9사단 전차공격대대에 전속됐으며, 1951년 1월 중순부터 2월 16일까지 이어진 중공군 공세에 맞서 경북·강원도의 춘양·장성·하진부리 진격 작전 및 강원 정선 등지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한 일병의 유해가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65년 이후인 2016년 9월 7일. 강원 양구군 동면 월운리 수리봉 940고지에서 한 일병의 유해를 찾아냈던 당시 발굴팀장 이창선 상사는 “해발 1000m의 험준한 산악지형인 수리봉 일대는 21사단과 국유단 장병들이 매일 한두 시간을 왕복해야 하는 어려운 여건에도 한 명의 유해라도 더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며 “그 지역은 2017년에 발굴이 종료된 곳으로, 종료 1년을 앞둔 시점에 유해를 찾아 신원까지 확인된 사례여서 매우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일병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는 2년여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유가족이 유전자(DNA) 채취를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병열 씨가 뒤늦게 2018년 유전자 채취에 참여했던 것은 한 일병의 형수인 임두순(94) 여사 덕분이었다. 임 여사가 평소 시동생인 한 일병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등 그리움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꿈에서 시동생을 만났는데, 더 늦기 전에 유해를 찾는 것이 죽기 전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 이를 잘 알고 있던 병열 씨가 2018년 4월 부인과 함께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군부대가 운영하던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 DNA 시료 채취부스를 보게 됐고, DNA 채취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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