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인터넷 검열”… 靑 국민청원 한달새 26만명

‘http’보다 보안 높은 ‘https’
새기술 활용 데이터정보 파악
누가 접속했는지 볼 수 있어

젊은 남성 중심으로 반발 확산
“야동을 보는것도 선택의 자유”
단속비웃듯 우회로 개발·공유

전문가 “국가의 과한통제 우려
완벽하게 차단하는 방법 없어”


지난달 11일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방식으로 해외 유해·불법사이트 접속을 차단한 정부의 조치는 예상외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결정이 발표된 당일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란 제목으로 게재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달 만에 26만7906명의 동의를 받았다. 이들은 “인터넷 검열의 시초가 될 우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성인이 합법적으로 무엇을 하든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면서 불법촬영물(몰래카메라) 차단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의 해명 이후에도 국민청원 게시판엔 새로운 인터넷 차단 방식에 반대하는 글이 100건 넘게 올라왔고, 논란은 13일 현재까지 한 달여 동안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실효성 있는 규제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 논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에 대한 국가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라는 근본적 지점까지 파고들어 가는 양상이다.

◇SNI 방식 차단이란 = SNI는 불법 정보 보안 접속(https) 인증 과정에서 노출되는 사이트 이름을 등록해 불법 사이트 여부를 파악하고 차단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인터넷파일주소(URL) 차단’은 불법 사이트를 접속할 때 주소 입력창 앞에 ‘http’ 대신 ‘https’를 입력하면 간단히 뚫을 수 있었다. https는 http보다 보안 기능이 뛰어나 외부인이 중간에 데이터를 가로챌 수 없고,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ISP)조차도 이를 확인할 수 없다. 또 다른 방식인 도메인네임서버(DNS) 차단도 주소 변경 등으로 우회할 수 있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https 방식에도 암호화되지 않는 영역인 SNI 필드를 국가가 직접 제어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SNI 필드에선 사용자 컴퓨터와 웹사이트 운영서버가 데이터 암호화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용자가 접근하려는 웹사이트 주소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방통위와 방심위는 여기서 얻은 정보와 불법 사이트 목록 여부를 대조해 차단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새 방식을 두고 ISP가 정부 요청에 따라 사용자의 데이터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일종의 ‘검열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재경 한국폴리텍대학 정보보안과 교수는 “99.9%의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원하는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이 중 일부가 불법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데이터를 ‘까보는 행위’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관련 시민단체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 또한 “정부가 ‘이건 국민이 봐서는 안 되고, 이건 봐도 좋다’의 기준을 자의적으로 정하게 된 상황”이라며 “이를 통해 국가가 과한 통제권을 휘두르지는 않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방심위가 차단 사이트 명단을 밝히지 않은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방심위는 불법 도박 사이트 776건과 불법 음란물 96건 등 895개 사이트에 대해 시정요구(접속차단) 결정을 했지만, 정작 네티즌들은 어떤 사이트가 통제됐는지도 모른 채 인터넷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도 낙태 유도제를 배송하는 ‘위민온웹’ 등 일부 사이트에 대해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에 방심위는 “심의한 사이트 URL을 공개하라는 것은 불법 정보를 유통하라는 것과 같다”고 해명했다.

◇봇물 터지듯 개발되는 우회로 =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SNI 차단 우회법을 알려드립니다” 등의 게시물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시물엔 △SNI 필드까지 암호화하는 ESNI 기술 활용 △접속경로를 우회하는 가상사설망(VPN) 서비스가 들어있는 웹브라우저 사용 △최대전송유닛(MTU)을 잘게 쪼개 사용자가 어떤 정보를 전송하는지 식별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 등이 자세히 소개돼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완벽하게 불법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는 기술이란 없다”며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사후규제가 반드시 같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수립이 갈등을 부추기고 우회로를 양산하는 데 일조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재경 교수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면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주 교수도 “정부가 유해 사이트 차단 목록까지 만들어서 검열하는 게 과연 올바른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했다”고 꼬집었다.

◇‘야동’을 보는 것 자체가 불법?= 정부의 이번 조치에 20대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야한 동영상(야동)을 보는 게 왜 불법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야동을 허하라’라는 방향으로 희화화된 경향이 없지 않지만, 여기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한 인터넷 설립 이념과 배치됐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20만 건이 넘는 동의를 받은 국민청원 게시판 글에도 “https가 생긴 이유는 사용자의 개인정보와 보안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박재경 교수는 “인터넷상에서 야동을 찾아보는 건 선택의 자유로 봐야 한다”며 “불법 촬영된 영상물로 사적 이익을 얻으려는 사이트나 웹하드를 단속해야 하는데 모든 사용자의 인터넷 사용을 검열하겠다는 건 민주주의에도 어긋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부 “불법촬영물 근절을 위한 선택”= 이효성 위원장은 “불법 사이트 차단 및 피해자 보호라는 공익과 이에 대한 수단으로서 인터넷 규제 수준의 적정성에 대해 논의하겠다”며 “피해자를 지옥으로 몰아넣는 불법촬영물은 삭제되고 차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도 이번 정부의 결정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음란사이트가 불법촬영물을 포함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가 이런 사이트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면서 광고 수입이 줄고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 사이트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우성·최지영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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