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스위스 제네바 제40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연례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에서 킨타나 특별보고관은 북한의 반인도범죄에 대한 책임 규명을 위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인권침해 정보 저장소 및 데이터베이스의 설립 노력을 지지하며, 추가적인 인권침해를 저지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 보존하기 위해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문서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 날 말레이시아 검찰이 북한 김정남 독살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인도네시아 여성에 대해 돌연 기소를 취소하고 석방함으로써 북한 반인도 범죄의 책임 규명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역행하는 태도를 보였다. 2017년 6월 김정남 독살 사건 발생 당시 말레이시아 검찰은 가해자인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훈련된 암살자’로서, 신경작용제 VX가 피부보다 안구를 통해 더 쉽게 흡수된다는 특성을 고려해 김정남의 눈을 의도적으로 노렸고, 범행 직후 화장실로 급히 걸어가 손을 씻은 점을 볼 때 이들이 암살에 주도적으로 가담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인도네시아 여성 피의자에대한 기소 취소 및 석방 조치는 너무나 상반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2017년에는 이 사건에 대해 ‘분명한 테러 행위’라고 강하게 규탄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히면서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별다른 대응 조치를 마련하고 있지 않고, 말레이시아 검찰의 결정에 대해 우리 정부가 입장 표명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그러나 3년 전에 국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법 제13조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과 인권 증진을 위한 정보를 수집·기록하기 위해 통일부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두고, 기록센터는 관련 자료 및 정보의 수집·연구·보존·발간 등을 담당하게 되어 있다. 또한, 이 법에 기초해 법무부에 담당 기구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두어 북한의 반인도범죄를 포함한 인권침해에 관한 자료를 축적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인권기록센터 및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김정남 독살 사건의 경우에도 말레이시아 사법 당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자료를 수집·기록·보존하는 등 책임 규명에 노력했어야 했다. 지난 1987년 KAL 858기 폭파 사건의 당사자인 김현희의 증언이 북한의 반인도범죄 책임 규명에 크게 도움이 된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김정남 독살 사건도 정확한 사실 조사와 책임 규명 및 이에 대한 기록 보존을 위해 우리 정부는 이제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방문을 계기로 유엔 등 국제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책임 규명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국제공항 청사 내에서, 그것도 백주에 벌어진 김정남 독살 사건은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다. 이 사태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이제라도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말레이시아 정부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 북한 주민에 대한 독살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심각한 인권유린이자 반인륜적 행위인 만큼 국제사회와 공조를 통해 그 죄를 따져 묻고 기록을 남기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결코 안 된다. 문 정부는 북한인권기록센터 및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를 규정한 북한인권법 제정 취지대로 이들 기구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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