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약속’ 돈 받고 연락두절
현지 피해자 16명 망연자실


우즈베키스탄인 이너미터니브 압두무탈립전(26) 씨는 “이제 ‘한국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한때 K-팝과 한국 문화에 열광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가 이렇게 변한 계기는 한국인 유학 브로커가 제공했다. “한국에서 공부하겠다”는 그의 부푼 꿈은 한국인 브로커 A 씨를 만나면서 끔찍한 악몽이 됐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유학원을 운영하는 A 씨는 2017년 “입학금만 준비하면 한국 대학 입학과 비자 발급 전부를 해결해주겠다”며 학생들을 모집했다. 우즈베키스탄은 드라마 ‘대장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국영 채널을 통해 10차례나 재방영되는 등 중앙아시아 한류 열풍의 중심지로 꼽힌다. 한국 유학을 지망하는 학생도 크게 늘었다. 수도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압두무탈립전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문제는 현지 한국 대사관에서 이뤄진 비자 인터뷰에서 A 씨의 유학원 학생 대부분이 탈락하면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A 씨에게 입학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A 씨는 모든 연락을 두절한 채 현재 한국으로 잠적했다. 압두무탈립전 씨는 15일 서면 인터뷰에서 “입학금으로 낸 5300달러면 우즈베키스탄에서 고급 중형차를 한 대 살 수 있는 큰돈”이라며 “입학금을 마련하느라 빌렸던 돈을 갚기 위해 아버지가 러시아 사할린으로 건너가 막노동판을 떠돌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드러난 A 씨의 사기 피해자는 16명, 피해액만 8000만 원에 달한다.

이처럼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 유학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편승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유학 브로커들이 국가이미지까지 실추시키고 있다. 현지 유학원 상당수는 허술한 유학 준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문제를 키우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어학연수 비자로 들어왔다가 불법 체류하는 사례가 빈번해 유학생의 학습·재정능력을 면밀하게 평가하는 등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심사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지 교민 등이 유학원 등과 결탁해 한국 유학 지망생들을 상대로 돈만 받아 챙기는 등 유학 브로커 사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가급적 대학과 학생을 직접 연결해주는 방안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권·서종민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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