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통해 세금 다시 돌려받아
세금과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했던가. 하긴 아무리 경기가 어렵고 백성들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정부는 호황이다. 2018년 목표액 268조1000억 원보다 25조4000억 원을 더 거둬 총 국세수입이 293조60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결과를 놓고 보면 경기가 좋은 데도 불구하고 국민이 공연히 죽는소리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하나 정부는 초과징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금을 더 걷을 묘수 짜내기에 열중이다.
미술품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합의에 따라 관세를 면제하고 있다. 미술품을 인류의 문화적 자산이자 문명적 증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품 특히 현대미술품은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세금을 내고 나중에 소송을 통해 되돌려받는 불편함이 여전하다. 이는 통관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투철한 사명의식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사실 전문가도 가끔은 생경해 과연 이게 미술품일까 하는 경우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외국에선 미술품으로 인정하는 예술사진이나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의 빈티지 가구에 관세가 부과되는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엄청나게 변한 미술의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미 1892년 수입된 스테인드글라스를 두고 창문이냐 예술품이냐를 따졌다. 또 그리스 조각을 복제한 것도 예술과 제품 사이에서 혼란을 야기했다. 당시 가장 모던한 미학에 바탕을 두고 대상을 단순화·추상화한 브란쿠시의 이 작품을 미술품으로 인정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튼 작품은 전시 후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티헨(Edward Steichen·1879∼1973)이 구입했고 1980년 존 앤 메리 셜리의 손을 거쳐 시애틀미술관에 기증했다. 재판은 현대 예술의 가장 특별한 속성인 ‘추상성’을 합법화했다. 이후 예술가들은 영감을 얻은 사물이나 자연물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부여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백남준, 김수자는 작품을 구성하는 TV와 VCR, DVD가 가전제품이나 상품으로 분류돼 관세를 내고 소송을 통해 돌려받았다. 1991년 서울 인공갤러리는 전시를 위해 도널드 저드(Donald Judd·1928∼1994)의 알루미늄으로 만든 사각형 상자 모양의 작품을 반입했다가 산업용 제품으로 판정받았다. 결국 미국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했던 기록과 도록을 가지고 설명 끝에 무사히 통관을 완료했다. 성철 스님(1912∼1993)의 사리 봉안을 위해 일본 금세공장인에게 제작 의뢰했던 금동사리함도 법정 다툼을 벌여 미술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WTO 가입 국가에서 국제적으로 관세를 면제하는 품목을 규정한 관세품목분류표에 의하면 미술품과 표본, 골동품, 우표 역시 면세품목이다. 하지만 미술품은 세관의 판단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면 먼저 관세를 내고 소송을 통해 돌려받는 낭비를 반복해 왔다.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관세청에 미술전문가와 관세전문가로 구성된 ‘미술품 판정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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