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자유주의 언론 사상을 크게 신봉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모든 의견이나 사상의 옳고 그름은 시장에서 상품이 선택되는 것처럼 독자들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는 이른바 ‘사상의 공개시장(the open marketplace of idea)’ 이론을 주장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랬던 제퍼슨도 대통령 시절에 언론의 비판 때문에 대통령하기 힘들다고 고백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은 맞는 것 같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역시 베트남 전쟁에서 패한 이유가 언론의 공격 때문이었다고 불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적국인 아르헨티나 국방장관과 인터뷰한 BBC에 대해 허가(Royal Charter)를 취소하겠다고 크게 분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사들을 실제로 규제한 적은 거의 없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알 만한 정치 선진국들에서는 언론이 여야를 떠나 정치인들을 심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솔직히 언론과 사사건건 원색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그렇지만 그것도 언론사를 상대로 한 것이지 개별 언론인을 지목해서 비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에 집권 여당이 블룸버그 통신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보도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해당 기자를 실명으로 비판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앞의 사례들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언론에 대한 정치권의 불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권 정당일 경우에는 전혀 다르다. 국가권력에 의한 언론 통제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 선진국에서 그런 유혹에도 불구하고 실제 행위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다소 심하다 싶더라도 비판에 대해 겸허하고 인내할 수 있는 관용의 인식 위에서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인내가 토론과 합의를 도출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공고히 해줬던 것이다. 물론 우리 언론이 정치권, 특히 정치권력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비판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 역시 정치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 돼야 한다.

우리의 지난 정권들을 돌아보면, 언론과 갈등하면서 급속히 통치력이 약화한 사례들을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내내 이른바 ‘보수 언론’과 갈등했고, 정책이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언론을 탓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내내 언론사들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졌고, 심지어 일본의 산케이 신문과도 법정 소송을 벌였다. 어쩌면 언론사와의 갈등이 정치적·정책적으로 자신감이 결여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론 보도를 두고 공방전을 벌이고 비판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관용과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인식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또, 자기만이 옳고 국민의 절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권위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음을 드러내는 일일 수도 있다. 더구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걸고 투쟁해 집권한 정권이 이처럼 언론에 대해 반민주적인 몰인식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이 같은 행태들이 점점 자주 보이는 것이 혹시 ‘선악(善惡)의 구도’로 정치하는 게 원인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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