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후베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 앞 한 카페에서 자신의 한글 연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후베 교수는 “세종대왕은 천재였다. 그가 만든 한글은 정말 뛰어난 문자다. 한글을 통해서 정보기술(IT)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알브레히트 후베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 앞 한 카페에서 자신의 한글 연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후베 교수는 “세종대왕은 천재였다. 그가 만든 한글은 정말 뛰어난 문자다. 한글을 통해서 정보기술(IT)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한국인보다 한국어 더 잘하는 알브레히트 후베 獨 본대학 명예교수

1972년 뮌헨올림픽때 첫 인연
위생병으로 한국 대표팀 담당
獨파견 간호사·광부들과 만나
김치도 얻어먹고 초대도 받아

뮌헨대서 한국학 배우기 시작
유학 중이던 김광규시인 만나
허배라는 이름 그분이 지어줘

본대학, 러브콜 첫 한국학교수
26년간 250여명 제자 길러내
3년전 韓 돌아와 대학서 교편

가장 존경하는 인물 세종대왕
한글이 디지털화에 가장 적합


“묶여 있던 영웅인 한글, 이제는 정말 날개를 펴고 날아다닐 때가 됐어요.” 한글의 우수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파란 눈의 외국인한테 전해 듣는 건 이상한 경험이었다.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알브레히트 후베(69) 독일 본대학 명예교수를 지난 14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에서 만났다. 2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한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연구 성과를 보여준 그는 그동안 별생각 없이 한글을 써왔던 기자를 부끄럽게 했다. 후베 교수는 한글 전문가다. 독일에서 한국문학을 오래 가르쳤고, 한국에서도 서울대·한양대·성균관대 등에서 강의했다. 2년 전 제3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 ‘한글은 묶여 있는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한글이 디지털화에 최적화돼 있음을 설명해 국내 학계에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말에는 생애 처음 MBC 에브리원의 예능 ‘대한외국인’에 출연해 한국인 출연자마저 꺾고 최고의 ‘한글왕’에 올랐다. 최근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한글 학술서 ‘날개를 편 한글’의 출간을 준비 중이다. 후베 교수는 인터뷰 내내 “∼했어요”라는 존댓말을 썼다. 그의 한국 이름은 ‘허배(許培)’다.

◇한글과의 첫 인연은 뮌헨올림픽 = 후베 교수가 한글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47년 전, 1972년 뮌헨올림픽이 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20대의 군 위생병이었다. 마침 열린 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 담당 위생병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을 접했다. “그때는 한글보다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한국학 공부를 결정한 데에는 그때를 포함해 몇 차례 계기가 있었어요. 첫째는 뮌헨올림픽 때의 만남이었고요, 둘째는 볼프강 바우어 뮌헨대 중국학 교수를 통해 알게 된 소설가이자 동양철학자 이미륵(1899∼1950) 선생, 셋째는 안드레 에크하르트 베네딕트 수도원 신부, 그리고 넷째는 1970년대 독일에 파견됐던 한국인 간호사와 광부들이었어요.”

후베 교수는 원래 화학·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전공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한글을 접하게 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뮌헨에서 한국 간호사 등 한국인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이 김치도 주고, 심지어 우리 가족을 초대하기도 했어요. 제가 위생병으로 뮌헨올림픽에 참여했으니까요.”

◇이미륵, 바우어… 그리고 김광규 시인 = 그러나 무엇보다 후베 교수에게 한국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긴 건 이미륵과 그의 제자 바우어 교수였다. 이미륵은 ‘압록강은 흐른다’를 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에 수배돼 중국 상하이(上海)와 프랑스를 거쳐 1920년 독일로 망명했다. 뮌헨대에서 동물학·철학·생물학을 전공하고 1928년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47∼1949년까지 뮌헨대 동양학부에서 한학과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학생이었던 바우어는 이미륵의 강의와 인품에 반해 의학을 공부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접고 동양학을 전공해 뮌헨대 중국학 교수가 된 인물이다.

“1970년대만 해도 독일엔 한국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바우어 교수를 찾아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저를 반갑게 맞아줬어요. 그리고 제가 뮌헨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셨죠.”

또 한 사람은 한국에서 독일로 건너갔던 김광규 시인이다. 후베 교수는 뮌헨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할 무렵 유학생 신분이었던 김 시인을 만났다. “김 시인한테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허배’는 김 시인이 지어주신 거예요. 그때 사모님하고 독일에 사셨는데 저를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차려주시는 등 따뜻하게 대해 주셨어요. 김치, 된장찌개 등을 그때 먹어봤는데 제 입맛에 딱 맞았어요. 한국 음식은 땅에서 바로 나오는 힘이 느껴지는 음식이었어요.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음식. 그런데 일본 음식은 왠지 싫었어요, 하하.”

◇본대학 교수로 26년, 한국어 제자 250명 길러내 = 그렇게 해서 후베 교수는 뮌헨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했고, 1974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공부했다. “그때는 정말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입에 안 맞는 음식이 있어서 계속 배앓이를 하고 급기야 병원 신세를 졌던 기억이 있어요. 게다가 향수병이 심해져 결국 1년여 만에 독일로 돌아갔죠.”

후베 교수가 박사 논문과 하빌리타치온(교수 자격 시험)을 거쳐 독일 본대학의 러브콜을 받은 게 1989년이다. 그는 브루노 레빈 교수와 구기성 전 서울대 교수의 도움으로 본대학에 처음 설치된 한국학과의 교수가 됐다. 본대학의 한국학과 전통은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총리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비스마르크 총리가 외교부 산하에 동양언어연구소(Seminar Fuer Orientalische Sprachen)를 설치했는데 베를린에 있던 동양언어연구소가 1950년대 중반 본으로 이전하면서 본대학이 연구소의 거점이 됐고, 한국학의 메카가 됐다. 후베 교수는 이곳에서 2015년까지 26년간 교편을 잡으며 약 250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지금 그 제자들이 한국과 독일 곳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대사관, 문화원, 학교, 기업체 등에 널리 퍼져 있죠. 하지만 안타까운 것도 있어요. 제가 본대학을 퇴직한 이후 한국학 과정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고 해요. 너무 마음이 아프죠.” 후베 교수는 본대학 퇴직 후 2016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학과에서 번역학을 주제로 대학원 수업을 진행했다. 현재는 덕성여대 독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글 비밀 파헤친 역저 ‘날개를 편 한글’ 5월 출간 = 후베 교수는 연구 성과를 모은 학술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책의 제목은 ‘날개를 편 한글’. 박이정 출판사와 함께 5월 출간을 목표로 막바지 교정 작업 중이다. ‘날개를 편 한글’은 한글의 우수성을 연구한 책이다. 한글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기초로, 한글과 컴퓨터의 관계를 파헤쳤다. 이에 따르면 한글은 컴퓨터의 이진법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최고의 문자다.

“이 책은 제가 박사 논문을 쓸 때부터 줄곧 구상해오던 것이었어요. 1980년대 한국에 ‘아래아 한글’이 나왔잖아요. 저는 그때 그걸 개발한 서울대생을 만났어요. 바로 이찬진 씨죠. 그러고는 한글과 컴퓨터의 관계에 대해 문제점을 깨닫고 더욱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원전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훈민정음을 찾아봤는데 그걸 보는 순간, 그렇게 찾던 답을 발견했다고 할까요. 한글 자모의 순서, 컴퓨터 부호화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막 떠올랐어요. 당시 한글 타자가 2벌식이니, 3벌식이니 했는데 모두 엉터리였죠. 그래서 이것을 ‘한글의 기밀을 찾아서’(2010)라는 독일어 책으로 먼저 펴냈어요.” 책을 통해 후베 교수가 주장하는 것은 한글의 디지털화다. 컴퓨터 부호화나 자판 등과 관련한 현재의 문제점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후베 교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세종대왕이다.

◇예능 도전… 앞으로 한글 연구에 더 매진 = 후베 교수는 최근 방송에도 진출했다. 2018년 10월 MBC 에브리원 퀴즈쇼 ‘대한외국인’에 출연해 1등을 차지했다. ‘구쁘다’(배 속이 허전하다) 등 한국인도 알기 어려운 단어를 맞혔다. 3월 초에 또 한 번 녹화 촬영을 했다.

후베 교수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아직 미완성인 한글 연구를 더 깊이 있게 해보고 싶고, 또 한국과 독일을 잇는 다리 역할도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관심 분야가 너무 많은데, 한 분야를 끝마치면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박범신 소설가의 ‘고산자’를 번역 중인데 한국문화, 말(馬)과 역사가 흥미진진합니다.”

독일인을 만났는데 외국어를 쓰지 않고, 통역자 한 명 없이, 우리식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대화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끄집어내려는 후베 교수의 노력이 대단했다. 가끔은 기자가 모르거나 잘 떠오르지 않는 말도 가르쳐줬다. 그는 진정한 한국인이었다.

김인구 기자 cl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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