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렌레이 우르쥔훈데브 前 주한 몽골 대사 기고
조중훈 창업주 B727기증의사
1992년 김포공항에서 기증식
조양호 회장 15년째 ‘방사림’
황무지를 12만여그루 숲으로
1996년부터 몽골학생들 초청
대학 장학금·체류비 전액지원
지난달 말 한국 정부의 인천∼울란바토르 노선 추가 운수권 배분 직후, 한국 언론은 ‘몽골 하늘길이 개방됐다’ ‘독점이 깨졌다’ 등 대서특필했다. 양국 간 문화·경제 교류가 넓어진 하늘길만큼 더욱 활성화될 것임에는 분명하기에 추가 운수권 배분은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치·경제·문화 등 다방면에서 돈독해진 한·몽골 관계는 어려울 때 진정한 친구의 모습을 보여준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우정, 그리고 대를 이은 조양호 회장의 몽골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1991년 5월 5일. 당시 주한 몽골 대사였던 내가 조중훈 창업주를 만난 날을 기억한다. 조중건 당시 사장, 조양호 부사장(현 회장) 등 대한항공을 이끌어가게 될 핵심 인사도 알게 됐다. 당시 회장이었던 조중훈 창업주는 이 자리에서 “같은 동양인이기에 칭키즈칸을 존경하지만, 급변하는 시기다. 이제는 말만 타서는 뒤처진다”고 운을 떼고, 몽골 국민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며 아무 조건 없이 여객기 한 대를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의외였다. 몽골 정부에서 여객기를 기증받았던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몽골 항공 사업은 취약했다. 구소련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의 여객기 1대로 모스크바, 베이징, 이르쿠츠크 등 3곳만 운항하고 있었다. 장거리는 모스크바나 베이징에서 환승해야 했고, 이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했다. 항공기를 기증한다는 소문은 몽골 국내에서 번져 갔다. 어느새 조 창업주는 몽골에서 대한민국의 대명사가 됐다.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도도 증폭됐다.
1992년 7월 9일 김포공항에서 거행된 기증식에서 위용을 드러낸 B727 항공기는 외양은 물론 모든 부속품을 교환해 새 항공기나 마찬가지였다. 항공기 동체에는 영문으로 ‘Mongolian Airlines(몽골 항공)’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꼬리에는 말 휘장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이 몽골과 한국의 미래지향적이며 다방면적인 협력의 기초를 닦는 계기로 역사에 기록될 것임을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고, 이 말은 현실이 됐다.
1991년 한·몽골 항공협정 결과로 1996년 서울∼울란바토르 첫 전세편 취항이 시작됐다. 몽골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컸다. 수요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위기인 몽골 항공사를 망치려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나는 조 창업주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그는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며 “노선을 홍보하면서 열심히 뛰어다녀야 승객을 확보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나는 양국 간 정기노선 개설이 필요하다며 몽골 국회와 정부를 설득했고, 결국 1999년 11월 정기노선 개설로 이어졌다.
몽골에는 ‘선물 받은 말의 이빨을 세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진심에서 준 것이라면 조금 낡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 창업주가 기증한 B727은 몽골인들이 매일 타고 다니는 유일한 말처럼 오랫동안 애용됐다. 서울, 도쿄, 베이징, 모스크바, 베를린, 오사카로 밤낮없이 운항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몽골 고위직, 관리, 사업가 중에 이 항공기를 타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 몽골 정부는 양국 교류 활성화에 공헌한 조 창업주의 공로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수여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북극성 훈장을 받게 됐던 것이다.
조양호 회장도 선대 회장에 이어 한·몽골 양국 협력 증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조 회장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15년째 울란바토르 인근에 방사림(防沙林) 조성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방사림은 44만㎡ 규모로, 1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대규모 숲이 됐다.
한진그룹과 몽골의 관계를 진정한 협력 동반자로 확대·발전시킨 것은 몽골 학생에 대한 장학 제도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몽골의 우수한 학생을 한국으로 초청, 국내 대학 학자금과 체류비 전액을 지원하는 몽골 장학 사업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조 회장의 끊임없는 관심으로 몽골과 한진그룹은 진정한 협력 동반자로 거듭났다. 선대에 이어 조 회장도 2005년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조 창업주와 조 회장은 몽골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몽골인들은 늘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안다”고 말한다. 조 창업주는 몽골과 한국 사이에 인적·물적 교류를 위한 길을 닦은 선구자다. 조 회장은 그 길에서 양국 간 교류·협력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그들이 닦은 하늘길로 수만 명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다니고 있다. 이제 그 길은 한국 정부의 인천∼울란바토르 노선 추가 운수권 배분으로 더욱 넓어졌다.
B727을 기증받은 이래 몽골 항공산업은 계속 성장해 왔다. 이런 변화를 이뤄낸 데는 진정한 ‘몽골의 친구’ 조 창업주와 조 회장, 그리고 한진그룹의 관심과 지원의 역할이 지대했다. 한∼몽골 노선이 무한 경쟁 시대로 접어든 지금, 이 사실만은 잊히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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