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겐 쉼표가 필요하다 / 마이클 해리스 지음, 김승진 옮김/현암사

너무 많은 정보‘과잉영감’탓
창조성·기억력은 더 떨어져

인터넷 없이 한달살기에 도전
‘여백’ 다시 사랑하는 법 강조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에
끊임없이 트위터·웹서핑 몰두

‘폰목줄’ 새로운 용어까지 등장
폰없이 나갈수 있는 거리 의미


“내면의 삶이 실패할수록 우리는 더 집요하고 절박하게 우체국으로 간다.”

19세기 중반에 ‘월든’을 썼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시 외부와의 소통은 우편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100년을 넘겨 20세기 중반 영국 시인 W H 오든의 ‘야간 우편’이란 시 중 한 구절도 이 책에 인용돼 있다.

“우체부의 노크 소리에/가슴이 뛰지 않을 이 누가 있으랴/자신이 잊힌다는 것을 누가 견딜 수 있으랴.”

100년의 시간차에서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요새 우리는 순식간에 전해지는 전자 메일과 인터넷, 스마트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온라인과 SNS에서 ‘집요하고 절박하게’ 눈을 떼지 못하고, 습관처럼 메일함을 열어본다. 한적하기 짝이 없는 월든 호숫가에서 살았던 소로가 ‘내면의 삶이 실패할수록…’이라고 했던 데 대비한다면 온라인 시대에 우리의 내면은 황무지와 다름없고, 오든의 시에 견준다면 우리는 자신이 잊힌다는 공포 같은 ‘외로움’ 속에 사는 셈이다.

‘공간은 확장됐고, 시간은 죽은 세계’란 말은 ‘근대’를 설명할 때 인용돼왔지만, 지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세계야말로 적확하게 시간이 죽은 세상, 곧 여백이 없는 세상이 아닐까. 우리는 잠시라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끊기는 ‘여백’을 만나면 불안과 외로움의 ‘공황상태’를 겪는다. 이 책에 나오는 용어 중 ‘폰 목줄’(Phone Leash)은 휴대전화 없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며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장 거리를 말한다. 얼마 전 한 통신사 지사의 시설화재 때 난리를 떠올리면 된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소통되는 초연결 시대에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외로워졌을까.

책의 원제목은 ‘여백의 종말’(The End of Absence)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1980년생이다. 그는 ‘걸쳐있는 세대’(Straddle Generation)란 용어를 이 책에서 사용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 시대만 접했던 ‘디지털 원주민’은 아니지만, 청소년기(1990년대)에 인터넷을 만났던 세대를 말한다. ‘인터넷이 없던 세계를 기억하는 마지막 인류’이며, 오프라인 세계에서 온라인 세계로 이주해 왔다는 의미로 ‘디지털 이민자’라고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터넷 ‘전’과 ‘후’ 사이에서 ‘문화번역’을 시도한다.

공감이 가면서도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저자가 이전에 다섯 번이나 읽기를 시도하다 접어놓았던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읽어나가는 과정이다. 그는 두꺼운 소설을 들고 있으면서 집중하지 못하고 ‘언제나 무언가 다른 할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자주 읽기를 중단한다. 그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트위터나 이메일, 웹서핑 때문이다. 거기에 매달리지 않으면 ‘무언가 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바로 그런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매일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여백을 즐기지 못하고 여백으로부터 고통받게 됐다.

또 하나, 인터넷은 우리가 사실관계에 대한 정보를 덜 알아도 되게 해줬다. 즉각 손가락으로 검색만 하면 정보가 줄줄이 나온다. 클라우드 등을 통해 정보를 무수히 저장할 수 있게 됐다. ‘기억’조차 아웃소싱해 버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스마트폰에는 수백 개의 연락처가 있지만, 정작 기억하는 것은 몇 개 안 된다. 하지만 인류의 과학적 발견의 역사에서 보면, 가장 큰 도전은 정답이 있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이라기보다 질문을 제대로 던지는 힘이었다.

책에 나오는 새 용어 중 ‘과잉영감’(Overspire)은 너무 많은 영감(정보)을 받아서 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단계를 벗어나 버린 것이고, ‘클라우드 신뢰’(Cloud Faith)는 더 많이 쌓이는 데이터에서 더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가정하는 것인데, 바로 기억의 아웃소싱과 연관돼 있다.

초연결 시대에 우리는 언제나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많은 정보를 쌓아놓아 똑똑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기억이나 생각을 잘 못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 역설은 ‘똑똑하다’(smart)와 ‘멍청하다’(stupid)를 조합해 ‘멍똑하다’(smupid)라고 불린다. 우리는 여백을 다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또 아무리 부자여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좋은 정신과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저자는 직접 인터넷과 휴대전화·SNS 없이, 마치 ‘안식월’처럼 한 달을 살아보는 실험을 한다. 그는 “우리 정신은 연결성을 좋아하게끔 돼 있고, 여백은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28세의 하버드대 출신 소로가 숲으로 간 이유는 “외로움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외로웠기 때문”이라는, 그래서 “날것 그대로의 자아와 함께하고 싶었다”는 성찰은 신선하다. 곧, 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혼자 있어서가 아니라 홀로 있는 가운데 제대로 지낼 줄 모른다”는 깨달음이다. 이는 “중요한 것은 삶의 쉼표 자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저자는 복잡하게 연결된 생활 속에서 매 순간 어느 연결이 가장 중요한지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불필요한 지방분을 잘라내듯, ‘삶’이 아닌 것을 가려내자는 것이다. 336쪽, 1만6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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