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옷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촉감이 좋은 편안한 옷을 입으면 긴장이 풀리고 자유롭고 실험적인 디자인의 옷을 입으면 그동안 시도해본 적이 없는 일에 도전할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교도소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세상의 옷을 벗고 수의를 입는 일이다. 개인을 강도 높게 통제하고자 할 때면 옷부터 갈아입히는 것이다. 그만큼 옷은 엄격한 격리의 도구다. 조예슬 작가의 그림책 ‘새 옷’은 이 사회가 여성에게 입히는 단단한 억압과 차별의 옷을 여성 스스로 벗어던지고 새 옷이 기다리는 세계로 탈출하는 이야기다.
다섯 개의 꼭지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수진, 민주, 슬기라는 세 여성이 등장한다. 수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고 잊고 있었던 자신의 가능성을 떠올린다. 새가 돼 날아가려고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인간 무리가 장벽처럼 늘어선 채 수진을 가로막고 ‘여자’라는 옷을 입힌다. 이름도 목소리도 잃어버린 수진은 날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을 쓰고 책은 새가 돼 날아간다. 그 책은 민주라는 다른 여성에게 발견되고 수진의 이야기에서 용기를 얻은 민주는 치타가 돼 달린다.
그리고 민주가 달려간 곳에는 창문 하나 없는 사다리꼴의 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슬기가 있었다. 어린 여성인 슬기는 수진의 이야기를 만나 뛰쳐나올 힘을 얻는다. 슬기는 날아온 새와 치타의 도움으로 울타리를 부수며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기지개를 켠다.
2017년 겨울, 이 그림책은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먼저 소개됐다. 그러나 목표금액을 달성하지 못하고 무산됐던 아까운 작품이었다. 묻혀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던 시점이었지만 아직 새가 돼서 날아오르지는 못했던 답답한 상황 속에서 독자는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2018년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로 힘을 얻어 날아오른 여성의 목소리는 지난 한 해 수많은 용감한 치타의 고백을 이끌어 냈고 이 그림책도 제대로 출간돼 독자를 만나게 됐다. 작품 속에는 자신에게 입혀진 ‘남자’라는 갑옷을 자각하지 못했던 남성 지훈의 이야기도 있다. 수진, 민주, 슬기의 여성 연대 덕분에 지훈도 갑옷을 찢고 자신의 진짜 몸을 본다. 그리고 세상에는 여전히 갇혀 있는 사람이 많다.
수진이 날린 새가 슬기를 일으켰던 것처럼 그림책 ‘새 옷’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차별의 옷을 벗고 광활한 들판을 질주하며 새로운 공기를 마시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옷 안에 억눌린 이야기들도 함성이 돼 소리를 되찾기를 기대한다. 64쪽, 1만9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교수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