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구효서 ‘시계가 걸렸던 자리’배경… 강화군 고향집
“널 낳고 나니깐 아침햇살이…”
어머니 말씀에 관찰해보았다
1957년 9월18일 10시 06분
세상 전부였던 섬마을 작은 집
폐가 됐지만 남아있음에 감사
재봉틀·거울 있던 곳 그대로…
탄생과 죽음도 한순간에 불과
시곗바늘처럼 둥글게 돌고돌아
궁극에는 과거-미래도 만날 것
아직도 그곳에 그 자리가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옛집 안방의 아랫목 벽 위쪽에 녹슨 못 하나가 박혀 있다. 시계가 걸렸던 자리다. 괘종시계였지만 흔히 보던 것과는 달리 상자처럼 생긴 사각의 마호가니 나무장식이 우리 시계엔 없었다. 쟁반처럼 덜렁 크고 둥근 숫자판 아래 시계추가 달려 있는, 말하자면 심플한 개량형 괘종시계였던 것이다. 부모님의 미적 안목이 개량형의 수수함에 꽂혔다기보다는 시계라는 값나가는 물건을 뒤늦게 장만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집의 경제적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스툴 의자 같은 앉을깨에 올라가 콧구멍처럼 뚫린 시계 구멍에 나비 모양의 감음쇠를 넣어 시계 밥을 주면 시계는 시각에 맞추어 시각의 숫자만큼 종을 울려주었고 나와 가족들은 그 소리를 따라 일어나고 논밭으로 나가고 학교에 가고 밥을 먹고 잤다. 시계가 없을 때보다 시간을 세분하여 알뜰하게 썼으며 하루 중 가장 많이 바라다보는 것이 시계가 됐다.
내가 그 집에서 태어나던 날에는 시계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소설 ‘시계가 걸렸던 자리’의 어머니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널 낳고 나니깐 아침 햇살이 막 뒤꼍 창호지문 문턱에 떨어지고 있더라.”
소설 속의 너란 말할 것도 없이 나를 지칭하는 것이며 소설 속의 어머니 역시 나의 어머니였다. 실제로 나는 내 생일에 폐가가 된 고향집 안방에 쪼그리고 앉아 뒤꼍 창호지문 문턱에 떨어져 내리는 아침 햇살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정확한 시각을 알아냈다. 1957년 9월 18일 오전 10시 06분 45초. 이로써 막연히 사시(巳時·오전 9∼11시)로 알고 있었던 출생의 시각을 알게 됐고 이 일은 소설 ‘시계가 걸렸던 자리’의 모티브가 됐다.
폐가일망정 그 집이 아직 그곳에 남아 있다는 게 나로서는 고맙고 그립고 왠지 미안하다. 종도리에 새겨진 상량문을 보면 그 집은 병술년(1946년) 4월 13일 오전 1시에서 3시 사이에 마룻대를 올리며 고사를 지낸 걸로 돼 있다. 이웃 마을들이 대부분 번듯한 개량주택과 전원주택으로 변모했는데 어찌 그 집이 거기 그대로 있는 걸까. 초가지붕이 새마을운동 때 석면 슬레이트로 바뀐 걸 빼면 옛집 그대로다. 공동명의로 그 집과 텃밭을 구입한 서울의 몇몇 사람이 매매에 합의를 보지 못해 아직 남아 있노라는 고향 친구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으나 더 자세한 내력은 모른다.
그 집이 나에겐 세상의 전부였고 그래서 나의 세계는 좁았다. 산문집 ‘소년은 지나간다’에서 효서가 이웃집 여자아이와 계급장 놀이를 하거나 그 아이의 몸에다 완두콩으로 몹쓸 장난을 친 것도 그 집의 쪽문 문턱에 걸터앉아서였다. 신작로로 하염없이 지나가는 소의 행렬을 바라보았던 것도 그 집 행랑채의 작은 서창을 통해서였다.
행랑채 창문 밖 저 멀리로는 바다에 떠 있는 석모도와 교동도가 아득했다. 그 섬들은 현실이 아닐 만큼 멀었는데 어쩌다 일 년에 한 번 때 아닌 소떼 행렬이 신작로를 지남으로써 멀었던 비현실의 섬들이 현실로 가까워지는 충격을 맛보았다. 저 멀고 아득한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농사짓고 소를 키웠구나.
교동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 제공되는 대형 선박에 소를 싣고 우리 동네로 건너와서는 그 소들을 몰고 강화읍의 우시장까지 가서 팔았다. 소몰이 인력이 부족해서 우리 마을 청년들이 우시장까지 소를 대신 몰아다 주고 70원을 받았다. 그 일로 나는 멀고 작은 섬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과 우시장까지는 30리라는 것과 30리 밖에도 마을이 있고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30리 바깥도 역시 한국 땅이라는 놀라운 사실도.
전기도 안 들어오고 버스도 없고 운송수단이라고는 소달구지밖에 없던 시절 소떼를 보며 마침내 바깥세상의 존재를 조금씩 알아갔다. ‘소년은 지나간다’에서 소달구지 끄는 정군이의 모델로 써먹은 우리 마을의 개똥이 아버지. 그가 장날마다 소달구지를 끌고 나섰던 곳도 그 30리 밖 그곳이었다는 것과, 그가 했던 일이 요즘 식으로 말하면 개인용달사업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나흘에 한 번씩 큰 소가죽 가방을 메고 편지 배달하는 우체부 아저씨 역시 그 먼 곳에서 온다는 것도. 나에게 30리보다 더 먼 곳은 없었다. 육지와 닿는 교량 하나 없는 섬 어린아이에겐 30리가 세상의 끝이었다.
우리 집 괘종시계 바늘은 쉴 새 없이 돌았고 나는 드디어 10리 밖의 강후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라디오 라디오’에 등장하는 순철이 형원이 태구 영근이를 만나게 됐다. 이들은 다음 달에도 만나기로 돼 있다. 우리가 공부했던 목재 교사는 헐리고, 나중에 지어져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했던 2층 콘크리트 건물이 지금은 1회 졸업생 동문 전정우 화백의 작업실 겸 전시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입학을 하게 됨으로써 나의 공간은 창후리 675번지 작은 집에서 산과 들로 이어지는 왕복 20리 등하굣길과 학교사회로 확대된 셈이었다. 들길 산길에는 뭇 꽃들이 철 따라 피고 찔레와 싱아와 삘기가 자랐으며 개구리 뱀 다람쥐가 달렸다. 어느새 같은 반의 여자아이를 좋아하게도 됐는데, 좋아한다는 말은 죽어도 못하는 깜냥이었던 데다, 도리어 공연히 그 애를 괴롭히기만 하다가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에게 혼겁이 나기도 했다.
등굣길이었는데 나보다 앞서가던 동네 동생 하나가 나에게 달려와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방앗간 앞에서 내가 지나가기만을 벼른다고 일렀다. 나는 큰길을 버리고 방앗간을 피해 느티나무 언덕을 몰래 넘다가 결국 여자아이의 아버지에게 덜미를 잡혀 후련하게 두들겨 맞았다. 그런 방앗간 그런 아버지 그런 느티나무가 있던 제법 아기자기한 세계였는데 그 또한 기껏해야 10리 안쪽의 세상이었다.
봄가을로 소풍을 가면서 나의 세상은 한 10리쯤 더 넓어졌다. 1, 2학년 때는 하점면의 5층 석탑까지였고 3, 4학년 때는 들길과 산길을 지나 부근리의 백련사에 갔다. 그곳 백련사에서 난생 처음으로 사이다라는 것을 사 먹고 눈과 코가 매워 죽는 줄 알았다. 백련사 아래 마을에는 아주 잘생긴 고인돌이라는 것이 밭 가운데 있었는데 선생님들은 어쩌자고 그 바위 덩어리 앞에다가 우리를 매번 한두 시간씩 묶어 두었는지 그때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5학년 때는 멀고 먼 적석사, 그리고 6학년 때는 마침내 1박 2일로 전등사엘 갔다. 대절 버스를 타고! 역시 생전 처음 먹어본 카스텔라가 5원이었는데 어머니는 용돈 10원을 쥐여주면서 ‘남겨오라’는 매정한 분부를 잊지 않았다. 어머니의 명령이 어찌나 야속하고 분했던지 5원을 남겨다가 어머니의 면전에 수류탄처럼 내던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열다섯 살에 그 섬을 아주 떠나게 됐다. 커다란 마룻바닥같이 넓적한 배에 버스가 소처럼 기어올랐다. 그 버스를 타고 멀어져가는 고향의 섬을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그 섬은 그리운 곳, 서러운 곳, 다시 찾는 곳이 됐고, 가없이 넓은 세상에 던져진 나는 바깥세상을 더는 꿈꾸지 않았다.
소설 ‘시계가 걸렸던 자리’ 속의 ‘나’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간다. 죽음을 앞둔 ‘나’가 자신이 태어난 집의 안방에서 시계가 걸렸던 자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상의 시곗바늘을 과거로 과거로 되돌린다. ‘나’가 막 태어나던 순간의 방과 집에서부터, 집이 지어지기 훨씬 이전의 산자락으로, 그리고 나무와 바위와 바람밖에 없던 텅 빈 원시의 공간으로. 그런 다음 다시 시곗바늘을 이번에는 미래로 미래로 내처 돌린다. 폐가의 안방에 눕는 병든 ‘나’의 모습에서부터, ‘나’가 죽고 집이 다 무너져 삭고 풍화돼 흩어지다가, 끝내는 나무와 바위와 바람밖에 없는 텅 빈 원시의 공간으로 복원되는 순간까지.
그러고 보면 나의 탄생과 죽음도, 집의 탄생과 죽음도 한순간에 불과한 것이며, 시간이라는 것도 앞으로 앞으로 곧게 뻗어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괘종시계의 숫자판처럼 둥글게 돌고 돌아 궁극에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기도 하는 것. 마치 내가 태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가 그 끝을 꿈꾸다가 다시 고향 마을 태어난 집 안방 그 자리에 돌아와 시계가 걸렸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듯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삶의 공간이 시나브로 확대되다가 시간의 흐름이 지속되면서 출발한 그 자리로 공간이 다시 축소되는 이치. 내가 ‘시계가 걸렸던 자리’를 만나는 고향길은 그러한 시간과 만나는 길이다. 과거의 시간을 걸을 때 현재의 내가 정확하고 분명해진다. 지금의 내가 문득 궁금해지면 나는 지나간 시간의 거울 위를 서성인다. 그곳이 바로 시계가 걸렸던 자리이며, 내가 시작되고 돌아가는 자리이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그 집이 무너지지 않는 한 매해 내 생일의 오전 10시 06분 45초에는 동산을 넘어온 아침 햇살이 뒤꼍 창호지문 문턱에 떨어져 내릴 것이다.
글·사진 = 구효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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