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발휘할 충분한 시간 없어
뉴욕 등 선진국의 15년과 대조
제법 규모 있는 어느 도시에서 개방형직인 ‘미술관장’을 공모했는데 24명이나 응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단 우리나라에 이렇게 관장직을 수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미술동네 사정을 잘 아는 필자는 입맛이 썼다. 왜 이렇게 많은 인력이 마치 메뚜기 떼처럼 몰려들까. 대한민국 미술관장의 임기는 대개 2년이다. ‘개방형 직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장은 공모에 의해 임명되면 첫 임기가 2년 또는 3년이고, 성과에 따라 1년 또는 2년을 연장받아 총 5년까지 일할 수 있다. 만약 5년이 넘어 다시 일하려면 공모절차를 통해 재임명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1년이라도 임기를 연장받거나 연임한 경우는 드물다. 지역 연고가 튼튼했던 인사 한두 명뿐이다.
관장직이 ‘파리목숨’이 된 것은 문화예술기관의 책임 있는 자리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거공신들의 논공행상에 따라 나눠주는 자리 중 하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이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니 2년이 지나면 다음 사람을 위해 가차없이 내쳐졌다. 그리고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을 내칠 때는 ‘역량이 부족했다’ ‘실적이 없다’ ‘평판과 다르게 실력이 없더라’는 이유를 내걸었다. 그리고 후임은 대개 캠프 출신 역량미달자들이었다. 그래서 미술관의 전문인력인 관장은 물론 주요 학예업무를 담당하는 고위(?) 학예직들까지 장돌뱅이, 보부상처럼 떠돌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풍속화로 유명한 김홍도(1745~?)나 조선 말기에 원산지역을 중심으로 당시 우리나라 풍속화를 그려 외국인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기산 김준근(생몰년 미상)이 보부상이나 장돌뱅이의 삶을 표현한 그림을 보면 장날에 맞춰 이리저리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는 고단함이 묻어나지만 어쩐지 노마드 같은 자유로운 삶의 희열이 함께한다. 하지만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권용정(1801~?)의 큰 쇠솥과 대바구니 등등을 지게에 지고 막 일어서려는 보부상의 모습은 오늘날 미술관장 자리를 두고 이리저리 뛰는 인재들의 지치고 낙담한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우울해진다.
대한민국에서 미술관은 문화예술기관이기 전에 행정기관이고 특정 장르를 관리하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관장도 행정기관장을 선임하듯 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반석을 세운 앨프리드 바(Alfred Jr. Barr·1902~1981)가 14년을 일했고, 현 관장 글렌 라우리(Glenn D. Lowry·1954~)는 1996년 부임해 지난해 2025년까지 정년을 무시하고 임기를 보장받았다. 그는 임기 중 MoMA를 두 번이나 증축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캠페인을 통해 후원금을 늘려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테이트 모던이나 메트(MET) 등 세계적인 미술관의 명성은 10~15년 이상 일한 관장들이 일궈낸 것이다.
이제라도 미술관장을 뽑을 때는 무늬만 객관성을 띤 공모제가 아니라 초빙, 추천제를 통해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할 것이다. 2년짜리 경력자만 양산하고, 역량 평가 같은 우스운 짓을 치우고 말이다. 미술관장이라는 문화와 정신을 다루는 중차대한 자리가 더 이상 정치가들의 주머니 속 공깃돌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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