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 ⑧ 예술의 패러다임 바꾼 ‘오브제’
뒤샹의 ‘샘’, 미술계에 큰 충격
‘오브제’ 개념 처음으로 등장
일상용품 → 예술품으로 승격
오펜하임 ‘여자 가정교사…’
구두묶인 접시 놓고 해석 분분
‘자신이 본 것만 진실’여기는
‘라쇼몬 효과’ 보여주는 작품
현대미술, 독창적인 화풍보다
‘어떤 것이 미술될수있나’ 몰두
아이디어가 창작 동력 떠올라
“요즘 뭐 쓰니?” “작년부터 쓰던 거.” “그걸 여태 쓰고 있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같은 것만 쓰면 문제가 없니?” “난 쓰던 걸 다 써야 다른 걸 쓸 수 있어.”
“그래도 이걸로 한번 바꿔 봐.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반응이 아주 좋아.”
지난해 가을 시작한 소설에 진척이 없던 여자는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신제품을 권하자 당황했다. 최근 우연히 읽은 수필의 한 대목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 두 사람의 대화다.
‘쓴다’라는 말을 자신의 입장으로만 생각하고 나눈 두 사람의 대화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작은 해석의 차이는 문제가 없지만 서로 다른 해석이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면 혼란이나 분열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창작의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초현실주의 여성미술가로 평가받는 메레 오펜하임(1913~1985)의 작품 ‘여자 가정교사, 나의 간호사’를 보라. 무엇이 떠오르는가.
보이는 그대로를 믿는 사람이라면 접시 위에 여자 구두를 묶어놓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밝은 쪽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결혼식에 쓰려고 갓 배달돼 온 구두가 아닐까요?”라고 말할 게다. 속물적 근성을 지닌 남자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조금은 은밀한 말투로 “여성의 그곳이 생각나게 하네요”라고 속삭일 수도 있다.
이런 음흉한 생각에 눈 흘기는 페미니스트는 묶인 구두를 보고 여성을 속박하는 사회 구조를 비판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 다른 여성운동가는 접시에 담긴 구두가 성을 음식으로 상품화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현대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구두도 아니고 접시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순수한 예술 작품으로 봐야만 올바른 감상법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구두를 묶어 접시 위에 올렸을까. 제목까지 엉뚱하게 붙여서. 필자 역시 작가를 만나 설명 들은 바 없으므로 그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자의 생각을 짐작할 수는 있다.
이처럼 미술가에 의해 예술 작품으로 승격되는 일상용품을 전문 용어로 ‘오브제’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오브제가 될까. 미술에서 이런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마르셀 뒤샹(1887~1968)이다. 삶의 대부분을 프로 체스 선수로 살았던 뒤샹은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됐다. 사용 목적이 분명한 기성품에 새로운 이미지를 붙여 예술품으로 만든다는 다소 황당해 보이는 생각이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해 보자.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름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도 있다. 연예인들이 예명을 만들어 이미지를 좋게 하는 것처럼. 하지만 육체는 바꿀 수가 없다.
여기서 이름이 개념을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육체에다 어떤 이름을 붙여주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생기게 된다. 이를테면 방금 태어난 아기에게는 이름이 없다. 3~5㎏ 정도의 살과 뼈로 이뤄진 물질일 뿐이다. 이 상태를 ‘오브제’라고 부를 수 있다. 아기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이미지가 생긴다. 이후로 아기는 그 이름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김춘수의 ‘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일부)
짐작하겠지만, 이름을 불러주기 전의 몸짓에 불과한 상태가 ‘오브제’ 개념에 가까우며, 이름을 불러서 꽃으로 통하게 된 것이 ‘이미지’인 셈이다.

뒤샹은 기성품에다 이런 생각을 적용해 당시 미술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 작품이 ‘샘’이다. 리처드 뮤트라는 양변기 제조회사의 상품인 남자용 소변기를 사다가 전시장(1917년 뉴욕에서 열린 독립미술가 전)에 전시하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출품작가도 리처드 뮤트라 하고. 그러나 이 작품은 천박하다는 이유로 전시되지 못했다. 어쩌면 뒤샹이 예견한 당연한 스캔들이었을 게다. 논쟁이 이어지면서 ‘샘’은 서양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됐다.
소변기는 공장에서 생산돼 화장실에 설치되기 전까지는 둥근 형태의 세라믹 물체일 뿐이다. 이름이 붙여지기 전 상태인 ‘오브제’다. 뒤샹은 여기에 ‘샘’이라는 개념을 부여했다. 이로부터 엄숙하게 조명을 받으며 전시된 소변기는 ‘샘’이라는 예술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만약 뒤샹이 ‘샘’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파이프’나 ‘모자’ 같은 제목으로 발표했다면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 작품이 된 소변기는 파이프나 모자로 알려졌을 것이다.
뒤샹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예술 신비주의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예술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예술적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 것이다.
뒤샹의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에 20세기 미술가들은 공들여 제작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찬사를 받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현대미술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 작가들은 더 이상 그리지 않는다. 아이디어만 짜낼 뿐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작가로 대접받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뒤샹 덕분에 20세기 미술에서 아이디어가 창작의 주요 동력으로 떠오른 셈이다. 현실을 재현하거나 해석하는 방법으로는 창작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새로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작가들에게 신천지 같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작가들은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려고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것이 미술이 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몰두하게 됐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검수 과정을 거쳐 인정받아야만 미술이 됐다. 아이디어를 정당화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이론이다. 그래서 미술평론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기발하고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그에 따른 사용 설명서가 따라붙는다. 매뉴얼이다. 소비자는 광고나 언론 보도를 통해 신제품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구입한 후 매뉴얼에 따라 사용한다.
현대미술에서 이론이 이 역할을 담당한다. 일종의 ‘현대미술 사용 설명서’ 같은 것이다. 따라서 매뉴얼을 모르면 작품에 다가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이론 자체가 어려우니까.
특히 초현실주의 계열 작가들이 이 방법을 애용했다. 오펜하임의 작품 대부분은 이렇게 연관성 없는 일상용품을 새로운 물체로 보이게끔 해서 주목받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아니면 물체는 그냥 물체일 뿐인데,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서만 해석하는 심리를 보여주려는 것이 작가의 진짜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걸 두고 ‘라쇼몬 효과’라고 한다. 한 가지 물체나 같은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려는 심리를 뜻한다. 일본의 국민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1910~1998)가 만들어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그랑프리)을 석권했던 영화 ‘라쇼몬’으로 인해 생겨난 말이다.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1892~1927)의 대표작 ‘나생문’과 ‘덤불 속’을 각색해 만든 영화다. 산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연루된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진술을 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미궁 속으로 빠진다는 이야기다. 모두 자기가 본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패전 후 일본의 불확실한 미래와 부조리한 세태를 비판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메이지(明治)유신의 성공으로 승승장구하며 20세기 강대국이 된 일본. 아시아 정복의 꿈을 실현했고, 미국을 꺾을 수 있다고 믿었던 일본인. 그들에게 이런 믿음은 객관적 진리로 통했다. 패전을 경험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본 것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신으로 여겼던 ‘천황폐하’가 인간 맥아더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믿었던 진리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닫게 됐다. 이런 일본의 현실을 구로사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화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라쇼몬 효과’의 의미는 오늘 우리나라 현실에서도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대중 선동 위력이 큰 지상파 뉴스가 그렇다는 게 문제다. 수많은 사람이 사실로 여겼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돼버린 거대한 사건도 해석이 분분할 수 있고, 그 이미지의 믿음도 깨져버리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이런 생각을 일상용품으로 보여주는 오브제의 힘은 대단하다. 그래서 마르셀 뒤샹이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게 아닐까. (문화일보 2월 26일자 23면 7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