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이전에 물감만으로 화면에 풍부한 표정을 만들어 간다. 물감들의 유동과 응고, 흘러내리다가 엉키는가 하면 씻기거나 긁힌 자국 같은 것들이 섬세한 뉘앙스와 다채로운 표면의 자취를 만든다. 여기에는 우연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맛, 나의 신체와 호흡, 운동과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색면추상 화가’로 통하는 홍정희(74·사진) 화백이 ‘작가노트’에서 밝힌 작품 세계다. 홍 화백의 초대전 ‘비커밍’(Becoming)이 4월 20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이길이구(2GIL29) 갤러리에서 열린다. 서울대 미술관 전시 이후 5년 만에 열린 개인전에서 홍 화백은 2005년부터 진행 중인 ‘나노’(Nano) 연작을 선보인다. ‘나노’는 기호화한 꽃과 집, 산 등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리듬감 있게 배치한 작업이다. 작가는 체로 쳐낸 톱밥을 물감에 섞어 독특한 마티에르를 만들었다.
홍 화백은 어린 시절 한복과 단청을 보며 색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나의 사상과 철학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사상과 문화, 미감과 색채가 스며들어 있다”며 “어린 시절 어머니가 다루던 전통적인 옷, 색채보자기, 여러 기물과 음식을 보면서 전통 오방색(청, 황, 적, 백, 흑)을 중심으로 색채에 눈을 떴다”고 설명했다.
어려서 체득한 색채에 대한 그 같은 감각을 홍 화백은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계속 작업을 해나가며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물감에 톱밥과 커피가루를 섞거나, 유화 특유의 기름기를 걷어내고 푸근한 맛을 살리기 위해 생선뼈를 갈아 넣는 등 색채 표현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화단에서 유명하다. 홍 화백은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강렬하면서도 깊고 다채로우면서도 원숙한 색채의 세계를 만들었다.
박영택(미술평론가) 경기대 교수는 “홍정희 화백은 색채의 물성화를 통해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평가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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