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이 열린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스 경기의 시구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었다. 경호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외곽 경호는 물론 경호원들에게 심판 옷을 입혀 근접 경호에 나섰다. 전 대통령이 공을 던지고 난 뒤 포수가 사인을 받기 위해 공을 들고 대통령 쪽으로 달려오자 외곽 경호원들은 예상에 없던 상황에 소총을 뽑아 들었다고 한다.

매일 대통령을 대신해 죽을 연습을 한다는 경호원은 대표적인 극한직업이다. 대통령이 통제된 실내 행사에 참석할 때는 그나마 낫지만, 시장 등 대중이 몰린 곳에 갈 때는 초긴장 상태다. 양복 안쪽에 권총을 소지하는 것은 물론 일부 경호원은 007가방에 넣은 기관단총을 소지한다. 가방은 방탄막으로도 사용된다. 일반 국민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을 좋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경호처에 ‘열린 경호’를 주문했다. 이 때문에 경호원들은 티가 나지 않게 군중 속에서 감시를 해야 하는데 돌발 상황에 대비하려면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 22일 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양복을 입지 않은 사복 경호원이 독일 H&K에서 개발한 소형 기관단총인 MP7을 들고 있는 장면이 노출돼 논란이 일었다. 가방에 넣어서 들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데 기관단총의 전체가 다 드러나고, 방아쇠에 손가락까지 넣고 있는 장면이 일반인들에게 보인 데 대해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민생시찰 현장에 기관총을 보이게 든 것은 경호수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당연한 직무수행이고 세계 어느 나라나 하는 경호의 기본”이라고 했다. 특히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 경호원이 양복 안에 총구가 보이는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장면을 지적하면서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시민과 함께 있을 때 기관단총을 노출한 것은 정상이 아니다. 총기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대통령 경호원들이 총기를 노출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전문가들도 그 정도면 경호 수칙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안을 줬다면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이다. 매사 자신들이 잘못한 것은 전(前) 정권도 그렇게 했다고 핑계 대며 사과 한마디 없고, 차별화할 때는 ‘DNA가 다르다’고 하는 해명이 더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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