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이, 바람이 분다, 73×117㎝, 젤스톤 위에 먹 수성안료, 2017
박진이, 바람이 분다, 73×117㎝, 젤스톤 위에 먹 수성안료, 2017
황량한 벌판에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추상표현주의를 거부한 데이비드 호크니가 온기 있는 쾌락주의를 선택한 데는 나름 기본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미학적 결단이 있었다. 얼었던 땅에 불과 하루 치 햇살만으로도 새싹이 올라오는 이 경이로운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은 ‘그리기’가 아니다. 자연에 바치는 ‘제의’에 더 가깝다.

박진이는 어린싹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아기살같이 부드럽고 티 없이 맑은 신록을 마주했을 때의 흥분과 기쁨을 화폭에 새긴다. 신록의 잎사귀에 화려한 꽃은 사족이다. 그 자체가 오묘한 심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뿌리로부터 줄기를 타고 막 올라온 수액이 표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촉촉함과 청초함, 이것만으로도 족하다.

“빛으로 열린 세상 / 흰 여백 속으로 흐르는 / 생명의 강” 김월수 시인이 작가의 그림을 보고서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이 분다’ 중)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화면 아래 생명의 수맥이 흐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소한 소재지만, 이는 ‘빛으로 열린 세상’이 맞는다. 잿빛 하늘 아래 살아야 하는 요즘, 한 줄기 빛과 청량한 바람으로 다가오니 더 반갑지 않은가.

이재언 미술평론가·인천 아트플랫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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