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는 비록 맑지 않았지만, 중류와 하류로 올수록 깨끗했다.”

한강 발원지인 태백산 검룡소(儉龍沼)에서 여주 여강까지 강을 따라 걸었던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강원도 태백시 부근의 한강 상류는 뜻밖에도 지저분하고 맑지 않았는데, 충주에서 달천과 합류되고 여주에서 섬강과 만나면서 유량도 풍부해지고 깨끗해졌다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통념을 깨는 이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치평요람’ 때문이다. 세종 때 편찬된 책 ‘치평요람’에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리더십 사례가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1200여 건의 우리 역사 이야기다. 가히 ‘한국형 리더십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1000여 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때 신바람이 나는지 또 언제 좌절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 주말에 읽은 원 간섭기 고려인 이야기는 좌절의 사례가 많았다. 원나라 황제의 말 한마디로 왕이 바뀌고(꼭두각시 국왕), 원나라에 빌붙은 자들에게 주는 뇌물 액수에 따라 벼슬이 달라졌다(흑책정사). 국왕들은 원 황제 사위라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고려에 귀국하지 않은 채 연경(燕京·북경)에 머물며 주요 결정을 내렸다(원격정치). 무책임한 정치의 피해자는 백성이었다. 딸이 동녀(童女)로 차출된 집안에서는 “슬프고 원통해 우물에 투신해 죽기까지” 했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한 명이라도 더 바치지 못해 안달이었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충렬왕과 충선왕 시대 고려 조정의 특징은 극심한 분열과 배제, 그리고 참소 정치다. 왕위가 아버지(충렬왕)와 아들(충선왕) 사이를 몇 차례 오가면서 어느 쪽에 줄을 서느냐가 출세와 부귀를 좌우했다. 원나라 조정에 언제 어떤 바람이 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권층은 자기 사람을 벼슬에 앉히고 재산을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됐다. 그것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제척(除斥)됐다. 반대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의 정통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원나라 조정만을 섬기면서 국내에 사달이 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에게 국격이나 민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원나라 황제에게 잘 보이거나, 참소가 황제 귀에 들어가 권좌에서 끌어내리면 끝이었다.

혼미한 반(半)식민의 정치 가운데도 책을 놓지 않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옥(下獄)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관의 농간을 막아낸 추적(秋適)의 용기, 상주판관 안향의 인재양성, 원나라의 발달된 천문학을 연구해 고려에 전수한 최성지 사례 등이 그것이다. 고려를 원나라에 복속시키려는 간신배들의 시도를 역사적 전거와 고전을 들어 논박한 이제현의 상소나, 원 황제를 설득해 동녀 공출을 중단시킨 이곡의 명문장은 혼탁한 상류를 정화(淨化)시키는 중류의 큰 시냇물이었다.

세종이 택한 수질 정화 방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야기 들려주기’였다. 1만3000여 가지 국가경영 사례가 실린 ‘치평요람’을 편찬해 지도자의 조건을 깨우친 것이나, ‘삼강행실’ 속 100여 가지 가언(嘉言)과 선행(善行)으로 백성의 마음을 감발(感發)시키려 한 예가 그것이다. 흙탕물을 맑게 하는 것은 결국 더러운 물을 모두 비워내는 게 아니라, 깨끗한 물을 조용히 계속해서 흘러 들어가게 하는 방법뿐이라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제척과 참소와 모함이 판치는 우리 사회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흙탕물을 전부 비워낼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누군가는 과거와 현재의 가언선행을 발굴해 지속적으로 들려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치평요람 속 한국인 이야기’를 편집하면서 나는 소망한다. 우리나라 국민, 특히 청소년들에게 그 이야기가 널리 흘러 들어가서 ‘한국인의 탈무드’로 자리매김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수질을 정화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