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사회부장

1967년 유엔총회는 ‘여성 차별 철폐선언’을 채택했다. 전문과 11개 조항을 통해 “국가의 완전한 발전과 인류의 복지 및 평화를 위해 여성이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평등한 조건으로 최대한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여성차별은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1조)로 규정한 뒤 “여성이 열등하다는 사고에 근거한 편견과 모든 관행 근절”(3조), “아동 혼인 금지”(6조), “모든 형태의 여성 인신매매 근절”(8조)을 촉구했다. 52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심상찮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성폭행 논란 사건을 보면 포악한 범죄를 단죄할 필요성을 느끼기 이전에 어떻게 이런 비뚤어진 성 인식이 만연한지 참담한 수준이다.

2012년 12월 16일 발생한 ‘뉴델리 여대생 버스 성폭행’은 인도가 “전 세계에서 여자로 살기 가장 어려운 나라”라는 오명을 재확인시켜준 사건이다. 수련의 자격증을 따기 직전 23세 조티 싱은 엔지니어 남자친구와 영화관람 후 오후 9시 귀가하던 버스 안에서 남자 6명에게 집단강간을 당했다. 내장까지 심각한 상해를 입고 13일 만에 숨졌다. 강간범들은 재판에서 “강간당할 때 저항하지 말고 조용히 허락했으면 됐다” “단정한 여자라면 잘못된 옷을 입고 저녁에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인도 법조인협회 공식 회원인 변호인들의 인터뷰는 강간범보다 더 충격적이다. “까놓고 말하면 남자 눈에 여자는 섹스다. 우리 문화에서 여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내 딸이 결혼도 하기 전에 일을 당했다면 친척 앞에서 석유를 부은 뒤 불을 질렀다” 등등.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인도의 지식인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인도의 전통 역시 공범이다. 사회 전반의 아동혼인, 윤간, 지참금 살인은 저변부터 지도층까지 여자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한국은 좀 나을까. ‘미투(Me Too)’ 이후 최근까지 상황을 보면 자신할 수 없다. 사회지도층이나 가진 자의 성 왜곡 실상이 더 끔찍하다. 머릿속에 괴물을 키우고 있음이 확인됐다. 버닝썬 사태와 관련된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자리를 마련하고 여자애들을 부르라” “잘 주는 애들로” “부르고 있는데, 주겠나 싶다. 일단 싼마이를 부르는 중” “우리 아는 여자는 그날 다 불러보자” “형이 선물 하나 보내줄께” “일본인 접대하고 남은 여성들” 등의 메시지가 오갔다. 맥락상 오해가 있다는 변명을 감안하고 형법상 성 접대, 성매매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사회적으로는 유죄다. 지식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일부 대학교수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스트레스가 많으면…돈도 좀 벌고 유명해지고 그럼 탈선하기 쉬워요. 뭔가 분출구 같은 게 생기니까”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다” “했던 일들을 카톡방에 올리지 않았다면 흠을 숨기고 잘 살았을 것”이라는 평가는 심상찮다. 경찰은 조사 도중 “성폭행 당할 때 느낌이 어땠나” “중요 부위를 그려보라”는 요구를 서슴지 않았다. 이들에게 여성은 돈으로 사고, 선물로 주고받는 상품이다. 몰카 탐닉은 중증 수준이다. 김학의·장자연 사건도 특권층의 심각한 성 인식을 드러낸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유엔 여성선언은 우리에게 아직도 저 먼 곳에 있다. 갈 길이 너무 멀다.

jup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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