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만우절이 있었나요?”

엊그제 점심때 어떤 분이 던진 질문이다. 모두가(萬) 바보처럼(愚) 장난스러운 거짓말을 주고받으며 즐기는 풍속(節)이 옛날에도 있었느냐는 이 말에 얼핏 떠오른 것은 태종의 첫눈 오는 날 장난이다. 1418년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 태종은 자신의 형 정종을 놀려주기로 작정했다. 첫눈을 상자에 담아 근사하게 포장한 뒤 ‘몸에 좋은 음식’이라며 형에게 보냈다. 동생의 장난임을 눈치챈 정종이 그 내시를 붙잡으려 했지만 벌써 도망간 뒤였다. 포장된 눈을 무심결에 받으면 받은 사람이 한턱을 내고(設宴) 반대로 그 장난을 눈치채고 가져온 사람을 붙잡으면 보낸 사람이 한턱을 내는 게 우리나라 풍속이라고 이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날의 더위팔기(賣暑), 즉 대보름날 친구를 찾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친구가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네 더위’라고 외쳐 더위를 파는 - 또는 역습을 당해 더위를 사게 되는 - 장난을 연상시키는 실록의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숨 쉴 공간’이었다.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시대에도 장난스러운 거짓말을 즐기는 여유가 있었구나 하는 안도였다.

세종 역시 농담을 즐겼다. 어전회의에서 윤회의 별명을 불러 장난치기도 하고, 성삼문의 어릴 적 이름을 불러 친근한(親)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종이나 세종의 장난 및 농담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대화에 한정됐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최대한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를 구사했다. 윤음(綸音), 즉 “왕의 말이 처음 나올 때는 실(絲)과 같으나 그 말이 외부에 나가면 거문고 줄(綸)과 같아서 끊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가 쓴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를 보면 국가 지도자의 거짓말에는 두 차원이 있다. 그 하나는 지도자가 부패하거나 비겁해서 하는 이기적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전략적 거짓말이다. 전자는 돌아볼 가치도 없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선의의 거짓말(noble lie)이나 국가 사이에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외교적 거짓말의 경우에는 칸트의 명제, 즉 ‘거짓말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지는 데 있어 가장 중대한 위반’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자라 할지라도 지도자는 거짓말의 부작용을 크게 유념해야 한다.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거짓말의 부작용 중 후폭풍(blowback), 즉 자동차가 발진할 때 내뿜는 매연을 뒤집어쓴, 뒤에 있는 사람이 자동차를 싫어하듯이 자국의 법과 제도를 존중하지 않게 되는 것은 간접적인 악영향이다. 불길이 연소장치를 타고 역류(backfire)하는 부작용은 그 피해가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지도부 내부의 불신 풍조와 모함이나 암살 등이 그것이다.

세종이 거짓말하는 관리를 미워하고, 소통 구조를 왜곡하는 내시와 승지를 엄히 처벌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말의 통로가 왜곡되면 위에서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고, 왕과 신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국정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무엇보다 백성들이 지도자들을 경멸하게 된다는 게 세종의 판단이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정치가 경멸 풍조를 개선하는 첫걸음은 지도자의 언어 교정으로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萬) 단 하루만이라도 거짓말하지 않는 날, 서로 신뢰하여 지혜로워지는(賢) ‘만현절(萬賢節)’이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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