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 3개월로 할부” 애교
강지광은 커피 50잔 돌려
2016년 100승 채운 김광현
닭강정 주문,선수단에 제공
지난해 300홈런 달성한 최정
라커룸·코치실에 신체 건조기
메이저리그는 국내와 정반대
베테랑이 밥 사주면서 축하
2017년 3000안타 친 벨트레
1인당 양주 1병씩 돌린 일화
올 시즌 초반 SK엔 훈훈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다.
지난달 23일 2019 신한은행 마이카 프로야구 개막일과 24일 불펜투수 하재훈과 강지광이 데뷔 첫승을 거뒀기 때문. 그리고 둘은 첫승을 자축하며 ‘한턱’을 냈다.
하재훈은 첫승을 거둔 다음날 인천SK행복드림구장 SK 라커룸에 피자 25판을 돌렸고, 강지광 역시 첫승을 거둔 다음날 커피 50잔을 주문했다. 피자파티, 커피파티로 시즌을 시작한 SK는 2일까지 6승 3패로 2위를 달렸다.
하재훈은 고교 졸업 후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시카고 컵스,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 등을 거쳐 국내로 유턴한 케이스. 강지광은 지난해 야수에서 투수로 전업했고, 프로 입문 11년 만에 승리투수가 됐기에 동료, 선후배들은 ‘덕담’을 쏟아부으면서 축하하고 격려했다.
프로야구에선 선수가 한턱 쓰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기억할 만한 승리, 안타, 홈런을 날리면 어김없이 작은 잔칫상을 마련한다. 동료, 선후배의 도움이 없다면 승리, 안타, 홈런 등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2016년 4월 24일 개인 통산 100승을 채운 SK의 에이스 김광현은 그다음 홈경기에서 인천의 명물인 닭강정을 주문, 선수단에 제공했다.
선수단은 물론 감독과 코치, 그리고 프런트에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SK의 간판타자 최정은 지난해 7월 8일 한화전에서 역대 11번째로 300홈런을 달성한 뒤 라커룸과 코치실에 몸을 말릴 수 있는 ‘신체 건조기’를 선물했다. 잘 던지고도 타자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수를 거두지 못하거나 패전투수가 되면 ‘다음 경기에선 잘 때려달라’는 의미에서 야수들에게 캔커피를 건네며 ‘애교’를 떨기도 한다.
주로 첫승이 잔칫상의 주된 테마다. 그런데 첫승은 대부분 신인, 또는 저연봉자의 몫. 올해 연봉 2700만 원을 받는 신인 하재훈은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 탓에 1군 매니저에게 50만 원 상당의 피자 25판을 주문하면서 “3개월 할부로 주문해달라”고 부탁해 웃음을 유도했다. 하재훈은 “선수단에 한턱 내는 한국 특유의 정은 정말 좋은 전통”이라면서 “올해 개막전에서 의미 있는 첫승을 거뒀고, 그것을 기념하는 피자를 함께 먹으니 진짜 식구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메이저리그는 국내와는 정반대다. 신인 혹은 어린 후배가 첫승을 거두거나, 결승타를 날리는 등 팀에 기여하면 베테랑이 데리고 나가 밥을 사 먹인다. 고참의 의무이자 권리인 셈.
물론 예외는 있다. 3000안타, 200승 등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기록을 달성하면 국내에서처럼 선수단에 한턱 쓴다. 2017년 7월 3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역대 31번째로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아드리안 벨트레(은퇴)는 행복을 함께 나누고자 선수, 프런트에게 양주를 1인당 1병씩 돌려 화제가 됐다.
올해 한국 무대에 데뷔한 외국인 선수는 모두 19명이다. 외국인 선수에겐 한국 특유의 잔칫상이 신기할 따름. 한화 투수 채드 벨은 “빅리그는 팀마다 관례가 조금씩 다르다”면서 “첫승을 거둔 투수가 한턱 쓰는 것은 보지 못했고, 반대로 첫승을 거둔 투수에게 팀 고참이나 스타급이 밥을 사준다”면서 “한국에 온 만큼 기회가 된다면 포수, 불펜, 젊은 선수들과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에서와는 달리 자신이 동료들을 대접하겠다는 뜻이다. 벨은 지난달 24일 두산전, 30일 NC전에 선발 등판해 2연승을 거뒀다.
구기 프로스포츠에서 한턱 쓰는 건 프로야구가 유일하다. 프로야구는 가장 많은 인원이 경기에 투입되고,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한다. 게임 수가 가장 많고, 또 경기 시간도 가장 길다. 동료애가 없다면 6개월 넘는 대장정을 버텨내기 힘들다. 작은 잔칫상은 긴장을 누그러뜨리면서 화합을 다지는 이벤트. 고맙다는 인사이자,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작은 잔치가 라커룸에서 자주 연출되는 팀일수록 성적이 좋고,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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