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성과를 내기보다는 진정한 소통을 이루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는 “양보하고 타협하며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걸 좋아한다”며 “1년 동안 서울시향 구성원들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성과를 내기보다는 진정한 소통을 이루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는 “양보하고 타협하며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걸 좋아한다”며 “1년 동안 서울시향 구성원들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취임 1주년 맞은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

초등학교 시절 바이올린 입문
예원학교 입학 연주자 꿈꾸다
인문계고 진학 서울법대 입학

사시 1차 합격하고 진로 방황
유럽여행 중 오케스트라 보며
‘공연 기획 일 하겠다’다짐해

시향, 공백 메우고 단원들 안정
노사관계도 협치 통해 풀어가
이젠 시민에 기쁨 주는 단체로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소녀는 초등학생 때 바이올린으로 마음을 바꾸고 예원학교에 입학해 연주자를 꿈꿨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는 인문계로 방향을 틀었고,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사법고시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을 포기하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오케스트라 공연을 찾아다녔다. 이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공연팀장으로 일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고, 다시 미국 벤저민 N 카도조 로스쿨에서 법학석사(지식재산법) 학위를 받았다. 한예종 교수로 예술경영을 가르치던 그는 서울대 법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법정책학)를 취득했고, 지난해 3월 서울시립교향악단 제5대 대표로 취임했다. 음악과 법을 넘나들며 독특한 이력을 쌓아온 강은경(49) 대표의 삶이다.

평생 한길을 꾸준히 걸어도 인생의 성공을 이뤄내기 힘든 현실에서 차근차근 자신의 꿈을 실현해온 강은경 대표의 이름 앞에는 자연스럽게 ‘팔방미인(八方美人)’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향 대표실에서 그를 만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그에게 음악과 법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물으니 “어머니는 피아노 전공자고, 아버지는 법조인이었다”는 답을 내놨다. 갑자기 그가 달리 보였다. 요즘 세상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인생 방향을 결정한 이런 효녀가 있다니.

“좋게 보면 효녀지만 두 분께 기대감만 심어드리고 결국은 제3의 선택을 했으니 불효녀죠(웃음). 어머니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지만 아버지는 법대를 나와 예술계에서 일하는 저를 보고 많이 실망하셨어요. 그러다가 딸이 서울시향 대표가 됐다니까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언젠가는 ‘우리 딸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구나’ 생각하실 거예요. 그럼 됐죠.”

그와 얘기를 나눠보면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강한 의지를 지녔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어머니가 피아노를 가르쳐주지 않으셨어요. 제가 음악을 하기를 은근히 기대하셨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셨죠. 다섯 살 때 친구들과 놀고 집에 오는 길에 우연히 피아노학원에 들어갔어요. 당시에는 피아노가 흔치 않아서 어떻게 치는 건지 궁금했어요. 다른 친구가 치는 모습을 보고 하고 싶어서 선생님께 ‘내일부터 오겠다’고 말했죠.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어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지만 하고 싶은 일은 과감하게 실행하는 성격이었거든요. 제가 선택한 일은 끝까지 책임을 지고요.”

그는 인터뷰 내내 “새로운 문을 열었다” “손을 깊이 담갔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바이올린을 배워보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새로운 문을 열고, 손을 깊게 담갔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호기심이 일면 바로 손을 담갔어요. 얕게 오래 담그기보다는 깊게 담가서 온도가 제게 맞는지 빨리 파악하죠. 사실 어머니 꿈이 바이올리니스트였어요. 외할머니의 뜻대로 피아노를 전공하셨지만 제게는 바이올린을 권하셨어요.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제게 잘 맞는 악기라는 걸 알게 됐고, 예원학교에 입학했죠. 바이올린은 제 성장기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줬어요. 지금도 심란할 때면 바이올린을 연주해요.”

콩쿠르에서 상도 타며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중학생이 예고 진학을 앞두고 인문계를 선택한 건 그의 앞에 또 다른 문이 보였기 때문이다.

“중3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시기였어요. 온갖 생각을 다 했죠. 제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음악 외에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일을 찾고 싶었어요. 예고에 가면 대학까지 계속 같은 친구들과 경쟁하며 성장해야 하는데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는 항상 최종 선택권을 제게 주셨어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문화예술 쪽 일은 꼭 하겠다고 마음을 굳혔어요. 법대 진학은 현실적 선택이었어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성과가 필요했어요. 법을 공부하면 세상에 도움이 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고요.”

하지만 법 공부가 그의 이상과 맞지 않았고 방황의 시간이 이어졌다.

“법대에서 공부하며 ‘윈윈’이 아닌 ‘윈루즈’ 게임을 해야 하는 게 불편했어요. 깨끗한 컵에서 먼지를 찾아내 논리적으로 공격해야 하는 게 법 공부인데 저는 깨진 컵에 이야기를 붙여서 빈티지로 표현하는 신비로운 상상을 즐기거든요. 공부 자체는 제 인생에 도움이 됐지만 다음에 열어야 할 문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어요. 몸도 안 좋아졌고요. 부모님을 설득해서 유럽 여행을 떠났어요.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며 ‘이런 공연을 기획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그의 방황은 예술경영을 만나며 마무리됐다. 예술과 법의 융복합이 그의 인생 코드와 잘 맞았다.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할 때는 많이 외로웠는데 예술경영으로 방향을 잡은 후부터는 전혀 외롭지 않았어요. 저는 솔로이스트보다 오케스트라가 좋아요. 여러 사람이 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행복하게 느껴져요. 한예종에 예술경영 대학원이 생겨서 일하면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죠. 그때 결혼도 했고, 집안일과 공부에만 집중했어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간에 현악 전문잡지에서 기자 생활도 했었어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대원문화재단에서 한국 연주자들을 세계 무대에 소개하는 뜻깊은 일도 했고요.”

그는 한예종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교훈을 전해줬다.

“학생들이 ‘교수님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그런 생각 할 시간에 손을 푹 담가보라고 조언해줬어요. 저는 항상 남들이 열어보지 않았던 문을 찾아서 열었거든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면 깊게 빠져들었어요. 제가 꿈을 키울 때는 마이너리티가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원성을 존중하는 시대잖아요. 부모님 세대의 가치관대로 한 우물을 파기보다는 이것저것 혼합해서 자신의 걸 만드는 게 중요해요.”

그가 열어온 여러 문에 서울시향이 겹쳐 있다. 중학생 때 서울시향 단원을 목표로 삼았다는 그에게 대표가 된 감회를 물었다.

“여러 문을 열 때마다 단계별로 서울시향을 생각했어요. 여기에 온 다음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도 서울시향 협연자로 데뷔했더라고요. 중학생 때는 서울시향의 충성스러운 팬이었고요. 예술경영을 공부한 후에는 자문위원, 평가위원으로도 일했어요. 그러다가 대표가 되니 ‘내가 드디어 이곳의 리더가 됐구나’ 하는 감격이 밀려왔어요. 취임하던 날 거창한 취임식 대신 단원, 직원들과 조용히 인사를 나눴어요. 그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은 분들이 저를 보며 미소를 지어줬어요. 따뜻한 눈빛에서 ‘음악을 한 분이니 우리를 이해해주겠구나’ 하는 바람을 읽었어요. 보통 밀월관계는 3개월이면 끝난다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전 대표와 직원 사이의 갈등으로 촉발된 ‘서울시향 사태’의 상처가 남은 상태에서 1년간 대표직을 수행한 그에게 “지난 1년을 자평해달라”고 했다.

“예술적인 공백을 하나씩 메워가고 있어요. 음악감독이 곧 선임될 거고, 단원들도 안정을 되찾았어요. 조금 식상한 표현이지만 경영적으로는 소통과 협치를 이뤘어요. 단원과 직원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사관계도 협치를 통해 풀어가고 있고요. 서울시향의 새로운 운영모델을 찾아가는 단계예요. 그동안 시민들이 잡음이 많은 단체, 어려운 음악을 하는 단체로 오해했지만 이젠 기쁨을 드리는 단체로 자리 잡아야죠. 1년 전에는 무겁고 힘 빠지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웃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요. 단원과 직원 면담을 하면 우느라 제 방 휴지를 한 통씩 쓰고 나갔는데 지금은 휴지 쓸 일이 없어요(웃음).”

서울시향은 지난해 12월 스위스 제네바·루체른, 이탈리아 우디네, 프랑스 그르노블·파리 등을 돌며 공연을 펼쳤다. 2014년 영국 런던 BBC 프롬스 공연 이후 4년 만의 유럽 투어다.

“공연은 좋았지만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어요. 독일 뮌헨에서 제네바로 가며 2대의 비행기에 나눠탔는데 한 대가 엔진 문제로 불시착했어요. 다행히 공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단원들이 많이 힘들었죠. 제게 불만을 쏟아냈어요. 그러면서 죽기 살기로 연주했고,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죠. 서울에 와서 항공사에 문제를 제기해 단원들 개인 보상을 얻어냈어요. 사고 당시에는 제게 화살이 날아왔지만 이제는 하트로 바뀌었어요(웃음).”

그는 성과를 내기보다는 과정을 즐겨온 자신의 삶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미국 의학자이자 소설가인 올리버 웬들 홈스의 말이 떠올라요. ‘입맞춤은 대포처럼 소리가 크진 않지만 잔향은 훨씬 길게 간다’고 했죠. 제 인생이 그랬어요. 동기부여가 되면 깊이 들어가고 결과가 바로 안 나와도 인내하며 기다려왔어요. 결국은 다 이뤄냈고요. 앞으로 어떤 문을 또 열지 저도 궁금해요. 서울시향에 있는 동안 많은 걸 만들고, 확실히 바꾸고 싶어요. 물론 저 하나 열심히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 만큼 나이도 먹었고, 경험도 쌓였어요.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다음 분이 할 수 있고, 후배 세대에서는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모든 일이 장기적으로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고 믿어요. 지금 하는 일이 안정되면 제 도움이 절실한 다른 분야가 또 생기겠죠. 그땐 그 문을 열고 손을 깊이 담글 거예요.”

강대표의 서울시향 1년…
영유아 프로그램·중학교엔 공연 영상… 생애주기별 문화 사업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지난 1년간 서울 시민과의 소통에 집중했다. 생애주기별 교육사업을 마련했고, 서울시교육청과 학생들의 창의력과 감성을 높이기 위한 업무협약(사진)도 체결했다.

서울시향은 생애주기별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공연장 출입에 제약이 있는 미취학 아동과 부모가 공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영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내놨다. 오는 5월 11일 서울시향 리허설룸에서 어린이들이 음악의 빠르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타임’ 공연을 펼친다. 또 올 하반기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을 2회 진행할 예정이다. 강 대표는 “어린이들이 서울시향과 놀며 음악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라며 “태교를 하며 주로 클래식을 들려주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공연을 접할 수 없는 미취학 아동들이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소개했다.

지난 2월 22일 서울시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교과서 음악 영상화 사업’은 교과서에 나오는 주요 클래식 음악을 서울시향이 이야기가 녹아 있는 영상으로 제작해 서울시교육청의 협조를 통해 일선 학교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대해 강 대표는 “학생들을 위한 콘서트를 열어도 못 오는 경우가 많아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사업을 시작했다”며 “단원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380여 개 중학교에 배포한다. 초등학생용 영상도 곧 준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이어 “앞으로 클래식 음악의 접근성을 높이고 서울시향을 알리는 사업을 계속 진행하겠다”며 “100세 시대에 맞춰 노년기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악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병원으로 찾아가는 콘서트도 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서울시향 상주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서울시향 전용공간이 아닌 ‘시민의 홀’ 개념”이라며 “시민들과 어우러져 함께 놀며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폭동이 많았던 미국 필라델피아에 오케스트라 상주홀인 킴멜센터를 만든 후 평화로워졌다. 로비 벽면에 기부자들의 이름이 깨알같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뭉클했다”며 “서울에도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할 공간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구철 문화부 부장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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