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 논설위원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담 결렬 직후였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된 통화였다. 트럼프의 향후 대북 정책 방향을 가늠할 기회였다. 특히 청와대는 미·북 합의문이 발표되면 즉시 남북 경제협력을 밀어붙이기 위해 미리 안보실 1·2차장을 교체하는 등 회담 결렬 30분 전까지도 자축 분위기에 빠졌다가 상황 파악도 못했다는 비판을 받던 시점이었다. 청와대의 김의겸 당시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중재를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여권은 이 발표를 근거 삼아 트럼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계속 협상할 의지가 있고, 더 나아가 문 정부의 역할을 신뢰하고 기대하는 것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미국을 아는 전문가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노이 회담 전부터 미 당국자들은 비공식적으로 문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미 정부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포기하면 제재를 완화해줄 것이라거나, ‘빅 딜’ 대신 ‘스몰 딜’도 받아들일 것이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는데, 대부분 한국 측의 ‘언론 플레이’라는 비판이었다. 미 당국자는 “트럼프 정부가 단 한순간도 완전한 비핵화를 포기한 적이 없는데, 한국 정부가 미 정부 입장을 호도(misleading)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런데 다시 중재를 요청했다고?

며칠 뒤 미·북 협상 핵심 인사에게 직접 물었다. “트럼프가 정말 문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했나? 중재라는 영어 표현은 무엇이었나?” 그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mediate)나 촉진(facilitate)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말해 달라(You should talk to them)고 했던 것 같다”고 답변했다. 중재 요청이 아니라 비핵화를 촉구하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관계자가 비보도를 요청했기 때문에 그동안 기사를 쓰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로 ‘You should talk to them’ 표현을 뒤늦게 공개한다. 첫째, 최근 들어 미 당국자들이 공개적으로 문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이 표현도 거의 비슷하게 보도됐다. 둘째, 정부가 정보를 독점했다고 마음대로 언론과 여론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왜곡이나 거짓보다는 침묵을 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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