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행보서 강경입장 선회
“전쟁까진 벌이고 싶지 않다”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선박들이 필리핀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 티투섬(필리핀명 파가사섬, 중국명 중예다오)에 대거 출현해 실력 행사를 벌인 것에 대해 “물러나라”며 적극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4일 “나는 중국에 호소하거나 간청하는 게 아니라 단지 파가사섬에서 중국이 손을 떼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그 섬에 군인이 있다”며 “당신(중국)이 그 섬을 건드리면 우리 군인에게 ‘자살 임무’를 명령할 것”이라고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을 ‘친구’라고 부르며 “이것은 경고가 아니라 친구에 대한 충고”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중국과의 전쟁은 ‘자살’이 될 것이라며 전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지난 2016년 집권 이후 중국 자본 유치 등 친(親)중국 행보를 해온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처럼 강경 선회한 것은 중국의 영유권 침해 행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국내 여론의 비판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H-6K 폭격기 이착륙 훈련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들(중국)이 비행기를 갖고 있고 스프래틀리제도에 주둔한 건 아니다”라고 말해 내부에서 질타를 받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에 앞서 필리핀 외교부도 성명을 내 “파가사섬은 필리핀이 주권과 관할권을 갖고 있다”며 “이 섬과 스프래틀리 제도에 있는 다른 섬 근처나 주변에 중국 선박들이 출현하는 것은 불법일 뿐만 아니라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규모 중국 선박이 반복적으로 지속해서 출현하는 것은 그 의도에 대한 의구심과 강압적인 목적을 지원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중국 선박들은 지난해 말부터 티투섬 주변에 자주 출몰하고 있다. 필리핀 현지 ABS-CBN 방송은 군 당국 발표를 인용해 중국 선박 600척 이상이 지난 1월부터 파가사섬을 돌고 있으며 지난 2월 10일 하루에만 87척이 나타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의 이 같은 행위는 영유권 분쟁 중인 티투섬에 필리핀이 활주로와 부두 시설 보강 공사를 벌이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필리핀 군 당국은 “중국 선박들이 어로 행위를 하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경우가 많다”며 “해상 민병대로 의심된다”고 잔뜩 경계하고 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필리핀 측과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솔직하고, 우호적이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을 뿐 필리핀 정부의 항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베이징 = 김충남 특파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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