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공장풍경’ 모네 ‘석탄…’
산산조각 난 유토피아 그려
요즘 점점 더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 때문에 온 천지가 난리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이 급발전하면서 더더욱 부옇고 매캐한 날이 늘고 있다. 물론 마스크 공장의 가동률을 높여 일자리를 늘려주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례 없는 일이다. 인류는 이런 산업화의 폐해를 인상파(impressionism)가 등장했던 프랑스 등 유럽에서 이미 경험했다.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인상파의 등장은 매우 혁명적인 사건이다. 미술은 ‘재현’이라는 굴레를 벗고 자연과 현실을 색채와 형태로 재해석한 조형미를 추구했다. 미술은 ‘무엇을 그리는가’라는 질문을 접고 ‘어떻게 그리는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했다. 물론 이런 방식은 당시 낯설고 기이해 저항감을 불러일으켰지만 20세기 추상화도 이런 기틀이 없었다면 없었을 것이다.
인상파는 증기기관의 발명에 따른 산업혁명과 신분 질서의 붕괴, 계급의 혁파, 참정권의 확대 그리고 미국의 독립 등 인간이 경험하지 못했던 큰 변화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산업혁명은 여유 있는 프티 부르주아(petit bourgeois)를 낳았고 이들이 새로운 소비자가 돼 인상파를 지원, 많은 비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아갔다. 인상파의 중심 모네(1840∼1926)나 피사로(1830∼1903), 르누아르(1841∼1919), 시슬리(Alfred Sisley, 1839∼1899)의 그림 대부분은 교양 있는 중산층의 밝고 즐겁고 행복한 삶이 주제다. 풍경도 마찬가지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발달하고 공업과 상업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농촌의 처녀 총각들이 공장근로자로 유입되자 도시인구는 급팽창해 1851년에는 파리 인구가 105만 명에 이르렀다. 이에 1853년 나폴레옹 3세(1808∼1873)는 중세도시의 때를 벗지 못했던 파리를 새로운 도시계획 아래 개조할 것을 오스만(Georges-Eugene Haussmann,1809∼1891)에게 명했다. 오스만은 파리를 도로, 상하수도, 녹지, 미관 등을 바탕으로 근대적인 도시로 바꿔나갔다. 증기기차가 파리와 근교 공장지대, 시골을 이어줘 일과 함께 주말여행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파리가 공장으로 포화 상태가 되자 근교는 공업단지가 됐고, 특히 경치 좋던 파리 서쪽 아스니에르(Asnieres) 주변은 산업단지로 변했다. 이곳은 당시 파리 시민들이 주말 당일치기 여행을 갔던 곳으로 쇠라(Seurat,1859∼1891)가 ‘아스니에르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그린 곳이기도 하다. 아무튼 인상파 화가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절을 그리는 동안 근대라는 이름의 산업화는 침략전쟁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우려 그리고 만연한 공해라는 예상치 못했던 재앙을 선물(?)했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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