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김병일 도산서원장

원장님! 이렇게 현직으로 불러드립니다. 전직을 예우하기 위해 ‘장관님’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도산서원 원장이라는 직함이 훨씬 명예롭겠기에.

며칠 전에 뵈었을 때 이런 문답을 했지요. “요즘도 마라톤 연습을 하십니까?” “아니에요, 지금은 못 해요.” 70대 중반 어른에게 마라톤 운운하며 무람없이 군 것은, 속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강행군 여정을 과연 탈 없이 마칠 수 있을까.

원장님께서는 내일(10일)부터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단’을 이끌고 하루 30여㎞씩 열이틀을 걸어야 합니다. 도산서원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조정에서 물러나 고향 안동으로 돌아간 여정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퇴계는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인 1569년, 69세 나이에 임금 선조에게 간청한 끝에 귀향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장안의 명사들이 조정을 온통 비우다시피 하고 나와서 백성과 함께 퇴계를 전송했다지요. 노학자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조선의 봄날 풍경 한쪽이 사뭇 아름답습니다.

퇴계의 귀향길을 오늘에 재현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좀 우려스러웠습니다. 페미니즘이 득세하는 세상의 조류에 대한 유학의 반기(反旗)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기에. 물론 이번 재현 행사를 통해 기리고자 하는 퇴계 정신은 오늘날의 여성주의에 오히려 가까운 것이지요. 원장님의 저서(‘퇴계처럼’ ‘선비처럼’)에 따르면, 퇴계는 사별한 첫 번째 부인의 부모뿐만 아니라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두 번째 부인의 부모까지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일찍 죽은 후에는 며느리를 개가하도록 했지요.

늘그막에 얻은 증손자와 여종에 관한 일화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공경하는 ‘일체경지(一切敬之)’의 실천을 보여줍니다. 손자며느리의 젖이 부족해 증손자가 영양실조 증세를 보이자, 손자는 퇴계에게 집안의 여종을 보내달라고 청했지요. 그러나 퇴계는 막 아기를 낳은 여종을 유모로 보내면 그 자식이 젖을 굶게 된다며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 자식을 살리자고 남의 자식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죠. 이번 재현단에 참여한 각계 인사들은 그런 퇴계의 인간다움을 좇고자 하는 분들일 겁니다. 세상의 반목과 갈등을 넘어서는 큰 도량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번 참여자들께서는 퇴계 언행록 중 다음 대목을 특별히 새기리라 믿습니다. ‘天下之義理無窮(천하지의리무궁) 豈可是己而非人(기가시기이비인)·천하에 진리가 끝없이 많은데 어찌 자기만 옳고 타인은 틀렸다고 할 것인가!’

원장님! 이번 재현 행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간담회를 열고 또 따로 기자들을 청해 만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경제 관료로 이름을 떨치고 장관까지 올랐던 분이 노년에 전관예우나 받으며 편히 지낼 수 있을 텐데….

원장님께서는 32년의 공직 생활을 끝낸 후 자유롭게 살았다고 했지요. 마라톤에 빠져 뉴욕대회 등에 나갔을 정도였습니다. 과거에 두어 번 들른 적이 있는 도산서원 수련원에서 이사장 제안을 했을 때 완곡히 사양하고 이사만 맡은 것은 ‘자유’를 즐기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추운 겨울 새벽에 어둠 속을 빨리 걷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이사회에 나가지 못했을 때, 궐석으로 이사장에 추대돼 버리자 하릴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지요.

“예기치 않게 일을 맡았지만 인연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제가 안동 인근인 고향 상주에서 열두 살까지 살았는데, 그때부터 옛 성현에 관한 이야기들을 좋아했어요. 그것이 노년에 저를 유학의 고장으로 이끈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장님께서 서원과 수련원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그 성심에 감탄하게 되더군요. 그 성심은 퇴계의 학문과 인간성에 대한 경외에서 나온 것임을 압니다. 퇴계는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려 평생 하루 두 끼 식사에 세 가지 반찬을 원칙으로 삼았다지요. 저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양이 넘치는 시대이니 밥상에 삼찬만 올려도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날로 불어나는 몸피를 줄여보겠다는 옥셈이 있었으나, 퇴계의 발자국을 조금은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퇴계가 봄의 한가운데서 피는 매화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한 것도 원장님에겐 자랑거리입니다. “퇴계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도산서당에 매화가 피어 있었지요. 퇴계는 당신을 기다리던 매화를 의인화해서 시를 주고받습니다. 그만큼 사랑하셨지요. 아시다시피, 지금 도산서원에 매화가 피려 하는데, 재현 행사 마지막 날에 들르면….”

이렇게 미리 아쉬워한 대로 그 마지막 날에는 매화꽃이 져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그렇더라도 그 향훈은 재현단 전체에 오롯이 전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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