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등 농사준비 바쁠 시기
농기구·모종 불 타 밤잠 설쳐
검게 타고 뼈만 남은 집이지만
살림 젖을까 임시로 천막 지붕
마을야산 나무 모조리 타버려
작은 비에도 산사태 날까 걱정
강원 동해안 산불 피해 주민들이 산불 재발화 위험을 누그러뜨린 비와 눈 소식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9일부터 강원 전역에 내린 비와 눈으로 산불 재발화 위험은 사라졌지만, 이번 비와 눈으로 무너진 주택이 더 손상되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한창 농사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기여서 반가운 봄비였지만, 대부분 피해 주민은 불에 탄 집 걱정과 토사 유출, 산사태 등을 걱정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10일 강원도 산불방지대책본부와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부터 비가 내린 산불 피해 지역들의 강우량은 강릉 22㎜, 동해 28㎜, 속초 17㎜, 고성 13.5㎜, 인제 8.5㎜를 기록했다.
지난 4일 발생한 산불로 큰 피해를 본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주민들은 비 소식이 전해진 지난 9일 오후 불에 탄 주택 지붕에 올라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임시 보수 작업을 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피해를 본 집을 찾아 방수포를 잡아주거나 못으로 방수포를 고정하는 일을 도왔다. 한 주민은 “집을 지은 지 2년 만에 산불로 지붕이 모두 타 버려 비가 새지 않도록 서둘러 방수포를 덮고 있다”며 “주택이 추가 손상을 입거나 살림살이가 망가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불로 볍씨와 모종은 물론 호미, 삽 등 농기구 한 자루도 챙기지 못했다”며 “농사 생각만 하면 가슴이 타들어 간다”고 한탄했다.
늦어지고 있는 복구 작업으로 토사 유출 등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산불로 동해안 5개 시·군은 총 530㏊ 규모의 산림이 황폐해졌다. 그러나 이에 따른 토사 유출과 산사태 위험에 대해서는 아직 별도의 안전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속초 장천마을 어두훈(61) 통장은 “마을 야산의 나무가 모두 타서 비가 조금만 내려도 토사가 흘러내린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안전 조치를 요청했는데 아직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고성군 토성면 용천 1리 이수준 이장은 “산사태 위험이 큰 지역을 대상으로 주민들이 자체 순찰을 하고 있지만, 굴러떨어진 돌이 집을 덮칠까 봐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강원도가 2002년 태풍 루사 때 산사태 발생지역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2000년 4월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곳으로 40㎜의 비에도 산사태 위험이 심각했던 것으로 보고됐다.
산불 피해 주민들은 반가운 봄비에도 농사 걱정이 제일 앞섰다. 평상시 4월 말이면 모내기를 시작하는데 올해에는 산불로 늦어질 가능성이 커 가슴을 졸이고 있다. 강릉 옥계면 남양1리 정만화(66) 이장은 “피해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이 볍씨와 농기계 지원”이라고 말했다. 속초 장천마을 산불 피해로 농협 수련원에서 생활하는 윤모 씨는 “편의시설이 갖춰져 생활은 불편이 없는데 보금자리 마련과 농사 걱정에 잠을 이루기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속초·고성·강릉 = 이성현 기자 sunny@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