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19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이 ‘잉태’된 해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 3·1운동 직후 여러 형태의 임시정부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이에 통합을 모색한 결과, 국내 한성정부의 정통성(법통)을 계승하되, 본부를 상해에 둔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년 9월 11일 탄생했다. 흥미롭게도 한성정부는 대통령 격인 집정관총재에 이승만을 추대했으며, 상해의 통합임시정부도 대통령에 이승만을 추대했다. 그런데도 임시정부 100주년에 이승만을 고의로 제외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1919년 탄생한 임시정부는 오늘의 대한민국 탄생에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계파 간의 분열로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임정이 독립을 위해 노력한 공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또한, 수립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왕정복고가 아닌 민주공화정을 추구하고, 독립된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자는 이상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심어 놓았다. 그래서 필자는 여러 지면을 통해 1919년을 ‘정신적 건국’으로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는 오늘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을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상해 통합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것이고, 통합임시정부는 한성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이기에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일은 법적으로는 한성 임정의 수립일인 4월 23일이나 상해 통합임정이 설립된 9월 11일이 돼야 더 논리적일 것이다. 4월 11일 수립된 상해임시정부는 9월에 창설되는 통합임시정부를 만들기 위해 해체됐기에 대한민국의 법통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혼선은 차후 차분히 논의되고 시정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임정은 국민·영토·주권이라는 국가의 성립 요건을 못 갖췄고, 국제사회로부터 승인받지도 못했다. 임정 설립으로 대한민국이 수립된 게 아님을 잘 인식한 것은 바로 임정 인사들이었다. 그래서 임정은 진정한 독립과 건국을 위해 노력했고, 1941년 11월에는 ‘건국강령’을 발표했다. 2017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함께 편찬한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919∼1945’는 소중한 자료집이다. 이 책에는 1945년 11월 4일 임정 요인들이 환국을 앞두고 남긴 글의 사진도 수록돼 있다. 여기서 최동오와 황학수는‘화평건국(和平建國)’ ‘건국필성(建國必成)’을 써서 진정한 건국을 염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임정 요인들도 그때까지 건국은 이뤄지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임시정부의 이상이 실현된 것은 1948년 대한민국의 수립이다. 유엔 감시 아래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자유선거이자 보통선거였던 5·10선거를 거쳐,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같은 해 12월 12일 유엔총회가 대한민국을 한반도 내의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함으로써 온전한 국가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1948년을 폄훼하고, 1919년을 건국 기점으로 삼아 2019년을 ‘건국 100주년’이라 하려는 시도가 집요하게 진행됐다. 그 배경에는 1948년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왜곡된 역사관이 있었다. 다행히, 건국 100주년이란 용어가 빠지게 됐고, 북한과 함께하려던 ‘3·1절 100주년 남북 공동행사’도 무산됐다. 북한은 3·1운동을 격하하고 임정을 부정하는데 그들과 함께 이런 행사를 하려던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쯤 이러한 역사관의 혼란에서 벗어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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