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다 /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2018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백희나 작가는 자신의 SNS에 짧은 공지를 올렸다. “그림책에 자료용으로 쓸 성견 정면 사진 구합니다. 개의 이름과 함께 사진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이어 이 글에 수많은 사연이 담긴 사진들이 모여들었다. ‘살바토레 풍천장어 패시픽 지용 똥용 한’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장수하는 개 ‘살바’, 피부병을 가진 채로 병원에 남겨져 버린 강아지를 데려와 벌써 열다섯 살이 된 ‘따랑이’, 얼굴은 몰티즈인데 무늬는 시추이며 몸집은 슈나우저 같은 열여섯 살 ‘추메리’ 등 올라온 이야기도 개의 모습도 다양했다. 백희나 작가는 이 사연을 접수하면서 자신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부터 고3 때까지 함께 자란 ‘방울이’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방울이는 사진이 없어도 만들 수 있다고, 다 만들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눈물이 나온다고.

위에서 언급한 개들은 모두 작가의 신작 그림책 ‘나는 개다’의 한 장면에 나란히 등장한다.

작가는 보내온 사진을 보며 스컬피로 개의 모양을 만들고 채색 후 촬영해 이 개들을 그림책 속 어느 골목에 함께 데려다 놓았다. 책에는 서른 마리가 넘는 개가 나온다. 그리고 그 개들은 모두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개다”라고 자신의 존엄을 드러낸다. 주인공인 구슬이는 작가가 사랑했던 방울이의 넷째이며 그의 다른 작품 ‘알사탕’에 나왔던 동동이의 친구다. 백희나 작가는 ‘알사탕’ 이야기에 새로운 연장선을 그으면서 동동이와 구슬이를 자리바꿈했다. 책은 철저하게 구슬이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얼굴도 냄새도 희미하지만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라는 구슬이의 독백은 어딘가에서 떠돌며 살아갈 형제자매 개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말이면서 작가의 요청에 조용히 대답하던 평범한 개와 그 개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헌사이기도 하다.

이 그림책은 갈색 반점이 흩어진 구슬이의 목덜미에서 시작해 갈색 물방울무늬 잠옷을 입은 동동이의 어깨로 이어진다. 둘은 추운 발코니에서 꼭 끌어안고 잠을 잔다. 빈집에서 구슬이가 가족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백희나 작가는 이 장면으로 “나는 기다린다. 고로 존재한다”는 개의 철학, 존재 인식에 관한 제1 원리를 보여준다. 독자는 동동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벼락같이 달려가는 구슬이의 모습에서 어떤 물리적 힘도 개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 개는 사랑이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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