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 지탱해준 아리랑 테마
국악관현악단용 풀 심포니 작곡
전통악기와 서양악기는 다르지만
모든 음악의 공존 가능성도 배워
전문 가수 혼자 노래하는 것 대신
전 단원이 합창에 참여해줘 감동
지난 3월 2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 콘서트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내가 음악감독과 피아노를 담당했다. 여기까지는 그전의 통상적 콘서트와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연을 주최하는 국립극장 측에서 사전에 특별한 미션을 주었다. 국악관현악단용의 풀 심포니를 작곡해 달라는 거였다. 물론 국악관현악단이라서 구성된 악기가 거의 전부 전통악기였다. 한 10년쯤 전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으로부터 이와 똑같은 제안을 직접 받았던 적이 있지만, 그때는 정중히 사양했다. 이유는 딱 하나. 내가 국악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일을 해볼 만한 타이밍과 계기가 생긴 데다, 약간의 용기가 생겼다고 생각해 받아들이게 되었다.
약 30분 분량의 풀사이즈 심포니 작품이라면 그 콘셉트와 테마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축이 무너진 작품으로서, 광대한 우주에 내던져져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음악이 돼 버린다. 그런 우려를 가지고 평소에 심포니 테마 선택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KBS로부터 매우 흥미 있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이전 칼럼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전전(戰前)·전중(戰中)·전후(戰後) 여러 가지 이유로 모국(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됐던, 정말 많은 디아스포라. 그들이 현지에서 매우 어렵과 힘든 생활을 견디면서 한결같이 노래해 오고, 그로부터 구원을 받고 희망과 꿈을 갖기 시작해 온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찾으려고 하니 ‘함께 아리랑을 찾는 여행에 나서자’는 것이었다.
내가 출연한 것은 극동아시아(연해주)부터 중앙아시아 편. 1937년 극동러시아에 있던 17만 명의 고려인이 어느 날 갑자기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됐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그들이 살아오던 생활 방식을 살려 꿋꿋이 살아 나갔다. 그때 그곳에서 늘 그들의 힘겨운 삶을 지탱해준 건 ‘아리랑’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이 ‘아리랑’과 디아스포라를 테마로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곧바로 심포니 작곡에 착수했다. 일반적인 작곡 속도의 5배 이상 시간이 걸리고, 어떤 것이 딱 어울리는 선택인지 확신이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 창작의 나날들이었다. 마침내 곡 전체를 완성하고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내가 상상하던 소리와 실제로 울리는 소리와의 괴리 때문에 많이 헤매었지만, 조금씩 낮은 전진이 시작됐다.
작업 초반에는,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사람들끼리 조심스럽게 접촉하듯 어색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단원들과의 분위기도 점점 부드러워졌고, 중반부터는 적극적인 의견도 주고받게 되었다. 그리고 리허설이 진행됨에 따라 내가 지금까지 체험한 소리와는 다른 차원의 사운드가 내 악보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모국의 전통악기 연주자 70여 명이 만들어내는 리허설에서는 미완성이었지만, 점점 더 좋아진 아름다운 음률…. 나름대로 오랜 시간 음악을 해왔다고 자부했는데도 감개무량했다. 역시 음악은 즐겁구나! 이래서 그만둘 수가 없구나!
그리고 전통악기든 서양악기든 관계없이 연주하는 악기의 구조나 주법, 음계에 큰 차이가 있어도, 음악이 전하는 기본은 역시 똑같음을 실감했다. 거기에 더해 테마의 축이 비뚤어지지만 않으면 괜찮다. 적절한 타이밍에 표현상의 전문적 수정을 해 나가는 것으로 음악의 기본을 갖추고,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와 전통악기도 공존할 수 있고, 또 그것이 기존의 개념과는 다른 새로운 표현 형식이 된다는 점도 새삼 깨달았다.
그런 심포니였지만, 이번에는 하나의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야기를 조금 되돌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던 당시 불리던 옛 아리랑은 악보나 음원 등으로 남아 있지 않아 음악으로 남아 있는 아리랑은 거의 없다. 그러나 가사에는 당시 고려인들의 생각이 응축돼 있어 정말 귀중한 것이다. 거기에 내가 새로 선율을 만들어 그 아리랑을 새롭게 재현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30분의 심포니 중 3∼4분짜리 노래인 아리랑의 단 1악장을 위해서 전문 가수가 화려하게 등장해 노래한다는 것은 본래 그들의 땅에서 불린 생활의 고락을 담은 노래 ‘아리랑’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지기 때문에, 심포니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건 당연했다.
그래서 무리인 줄을 알면서도 단원들에게 그 아리랑을 불러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게다가 곡의 끝부분에서는 전 단원의 합창으로. 만약 일반적인 서양 오케스트라였다면 그런 제안은 ‘완전 실격’으로, 말을 꺼내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양해를 전제로 정중하게 했다. 먼저 그 노래의 배경을 열심히 단원들에게 설명했다. 그랬더니 2명의 솔로 가창에 더해 마지막에는 전 단원이 아리랑을 뜨겁게 불러줬다. 심포니 연주 중 어느 한 악장에서 전 단원이 하는 노래는 일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뜻을 이해한 단원들이 생각을 바꾸어 모두가 참여해 주었다. 그렇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으로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는 물론 관객들에게도 깊은 의미가 전달돼 감동을 줄 수 있었다. 단원 모두의 이해와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장르가 다른 세계에서 들어온 양방언이라는 작곡가의 곡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단원, 스태프, 그리고 최수열 지휘자, 나의 악보를 전통악기로 편곡해준 계성원 씨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또 이런 훌륭한 공존의 기회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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