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 ⑨ 인간의 몸
장 포트리에 ‘인질’ 시리즈
두꺼운 석고로 몸뚱이 표현
루시안 프로이트 인물화는
몸을 감정없는 살덩이 묘사
프랜시스 베이컨 더 직설적
고기처럼 절단된 육체 그려
유대인 학살 트라우마 겪은
2차대전후 미술 새 화두는
정신·영혼 담는 그릇이 아닌
‘물질로서의 육체’ 관한 해석
‘충격의 미학’ 현대서도 유행
지금의 세상 과연 건강한가
넓은 창으로 찬란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고급호텔 레스토랑.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식탁보가 덮인 정갈한 분위기의 식탁, 상아색 접시에 방금 요리한 두툼한 비프스테이크가 놓여 있다. 은빛으로 빛나는 포크와 나이프 옆에는 커다란 글라스에 붉은 포도주가 담겨 있다. 미디엄으로 구워낸 스테이크는 갈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져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축사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타 죽은 소를 본 적이 있다. 불에 반쯤 그슬린 검붉은 사체 일부가 드러나고, 살결은 분홍색과 갈색 그리고 핏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참혹한 느낌이었다.
두 장면에는 모두 소가 등장한다. 불에 구워낸 쇠고기와 화재로 죽어 그슬린 소의 차이는 무엇일까. 쇠고기는 고깃덩어리, 즉 물질로 보이기 때문에 식욕을 돋우는 요리 재료로 읽힌다. 그러나 불에 타 죽은 소는 영혼이 있는 동물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져 두려움과 혐오감을 준다. 영혼과 물질의 관계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류사가 꾸려져 왔다.
현대미술에서 주목을 끈 주제 중 하나는 인간의 몸이었다. 정신이나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닌, 순수한 물질로서 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이었다.
패전의 징후가 짙어진 1944년, 나치는 인간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엄청나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가스실에서 대량 학살한 유대인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쓰레기처럼 다뤘다. 벌거벗겨진 수많은 시체를 소각하거나 매장하기 전에 프레스기에 넣어 압축한 것이다. 이처럼 끔찍한 광경은 유럽 지성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은 실존철학의 진화를 가져왔다. 인간의 본질을 물질로 보는 태도였다. 그 파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회화였다.
장 포트리에(1898∼1964)가 보여준 ‘인질’ 시리즈는 인간을 물질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석고나 시멘트를 두껍게 발라 무슨 형상인지 알 수 없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한데 엉겨 붙은 시체의 끔찍한 충격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했던 경험의 소산이었다.
포트리에는 현실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항전과 미술로 표출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중상을 입었고, 1940년부터는 파리 외곽에서 대독 항전단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작전 중 독일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투옥생활 중 유대인 학살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인간을 물질로 취급하는 극한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이때의 기억은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았다.
세상은 그의 작품이 발표되자 ‘물질회화’라고 불렀고, 미술사에서는 앵포르멜(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뜻)의 등장으로 평가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액션페인팅과 더불어 전후 국제미술로 자리매김한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추상미술이 시작된 것도 유럽에서 일어난 앵포르멜의 영향이다.
포트리에의 ‘인질’ 시리즈는 추상 기법으로 물질감을 강조해 이후 전개된 현대미술의 표현 방법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출발은 인간을 물질로 보겠다는 실존의 물음이었다. 이런 생각은 20세기 말 충격적 이미지의 구상회화가 출현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유대인으로 독일에서 태어난 루시안 프로이트(1922∼2012)도 인간의 몸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로 나치 정권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화가로 살았다. 1960년대부터 영국의 새로운 구상회화로 주목받았고, 인간 주제의 새로운 감각의 작품으로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평생 화실에서 모델을 세워놓고 캔버스에 유화로 그리는 전통적 방식의 작업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은둔의 화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70세가 돼서야 명성이 만개해 현대미술계는 물론 미술 시장에서도 최고의 작가가 됐다.
그가 그린 인간은 쇠고기를 볼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살과 뼈로 이뤄진 오브제로서 인간의 몸을 그리기 때문이다. 물감을 두껍게 발라 물질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표현 방법으로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루시안은 인간의 알몸을 그린다. 균형 잡힌 누드로서 몸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의 적나라한 몸이다. 뼈에 가죽만 살짝 붙어 있는 마른 여자, 발육이 더딘 기형적인 사람, 노동으로 단련된 거친 남자, 엄청나게 뚱뚱한 여자, 탄력 잃은 늙은 몸의 인물 등이 그의 모델이다. 그들은 멋진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그저 팽개쳐진 것 같은 자세거나 방치된 물건처럼 보이는 알몸뚱이다.
루시안은 정신의 지배를 받는 육신이 아니라 독립적 물질로서 몸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살덩어리의 피부감, 피부와 어우러지는 핏줄, 근육, 뼈 등 구조적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 모델에게 스튜디오 바닥에 포즈를 취하게 하고 강한 조명을 비춰 생생한 물질감을 관찰한다. 밝은 조명 아래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간의 몸에서는 생각의 틈을 찾기가 어렵다. 다른 이미지나 상상의 여지가 추호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인간의 물질적인 몸일 뿐이다. 정육점 진열대에 놓인 살코기를 보는 느낌이다. 작가가 의도하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의 인간의 몸이다.
그가 그린 대상 중에는 눈을 감고 쪼그리거나 무방비한 자세로 누워 있는 여자가 많다. 그들은 잠든 것 같기도 하고 시체처럼도 보인다. 루시안에게는 모델의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도 의미가 없다. 그저 분홍색과 갈색,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뤄진 오브제면 충분할 뿐이다. 삶과 죽음은 영혼의 문제니까.
루시안은 수술대 위의 환자를 수술하는 외과 의사의 심정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 의미로 그린 여자의 알몸을 보고 성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작가를 모독하는 무식한 태도일 것이다.
루시안 프로이트와 영국 구상회화의 쌍두마차 한 축을 담당한 프랜시스 베이컨(1902∼1992)이 표현한 인간의 몸은 한술 더 뜬다. 아예 “인간은 고기다”라고 직설적으로 뱉어낸다.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회화’를 보면 엽기적 살인마 영화 붐을 몰고 왔던 ‘양들의 침묵’(조너선 드미 감독, 1991년 작)의 충격적인 화면이 떠오른다. 머리가 예리한 칼로 절단된 사람 몸통이 검정 우산 속에 앉아 있고, 동물인지 사람인지 정체를 가늠키 어려운, 해체된 살코기가 밧줄에 매달려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닐 게다. 하지만 그림을 직접 본 사람들은 그 충격적 이미지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양들의 침묵’을 본 관객들이 살해된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잊을 수 없듯이.
프랜시스 베이컨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우선은 그의 삶 자체가 이처럼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는 16세에 가출한 후 사회의 가장 더럽고 추악한 바닥에서 마약과 동성애에 묻혀 사춘기를 단련했고,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동물적 본성과 폭력, 공포를 경험했다.
또 프랜시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뒤틀린 인물상은 파블로 피카소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인물을 해체했다가 조립해 감정의 농도를 짙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피카소가 그린 인물은 아름답다고 할 수가 없다. 정상적인 모습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려고 그렇게 그렸다. 그 감정 중에는 행복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슬픔, 공포, 괴로움, 분노, 울부짖음 같은 극한의 감정 상태가 많았다. 그래서 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전 직후 그려진 이 그림에서 당시 사회 분위기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머리 없는 사람은 이성이 마비된 인간상을 나타낸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을 차지하는 사회는 암흑이다. 검정 우산은 이러한 동물적 사회를 상징한다.
해체된 신체 내부가 허연 뼈와 피로 얼룩진 채 적나라하게 드러난 배경과 살코기 해체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진 바닥, 장기와 등뼈 등이 철골 구조물 사이에 진열된 화면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까지 스멀스멀 풍겨 나온다. 최근 우리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인기 주제로 유행하는 화면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분홍색이 이렇게도 보이는구나!’라고 할 정도다.
프랜시스는 이 같은 충격적 형상으로 관객의 눈길을 끌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보면서 불편해하지만,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비이성적 세상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엽기적 살인마 뉴스에 관심을 두는 심리처럼.
그렇게 해서 확인된 것이 현재 미술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충격의 미학’이다. 엽기적이고 추하며 섬뜩한 주제의 미술이다. 우리 미술계에서도 이런 흐름을 진취적 경향이라며 따라가는 추세다.
충격적 미학이 새롭고 진보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과연 건강한 것일까. 인간을 몸으로만 보고, 물질로 판단하는 그런 사회가 말이다. (문화일보 3월 26일자 22면 8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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