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이라는 이름이 워낙 커서 딴 세상 사람일 줄 알았는데, 참 소탈하네요.” 저와 함께 당신을 만난 문화부 동료 기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론을 많이 접해 온 ‘스타’의 내공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진솔함이 절로 묻어나더라는 것이지요.

지난달 중순의 만남이 지금껏 여운이 큰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그 하나는, 국립발레단의 아부다비 공연에서 당신이 느꼈던 감격을 오롯이 전달받았기 때문입니다. 국립발레단은 지난달 초에 열린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페스티벌에 초대받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단만 초대받는 축제라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한국의 국립발레단 수장으로서 후배 무용수들을 이끌고 가서 공연을 펼친 당신의 감회는 짐작할 만합니다. 중학생 때 모나코로 발레 유학을 가서 서양인들에게 지지 않으려 훨씬 더 독하게 연습을 했던 이가 아닙니까. 그랬던 이가 후배들과 함께 만든 한국 발레를 세계 무대에 올려서 열렬한 박수를 받았으니, “울컥하더라”는 말의 뜨듯한 온도가 듣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더군요.

또 하나는, 발레단 연습실에서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연습실 방문은 저의 요청으로 예정에 없이 이뤄졌습니다. 단원들은 오는 24∼28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릴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술감독님’을 심상히 대하더군요. 전혀 동요 없이 발레 마스터의 지휘에 따라 몸을 움직였습니다. 당신은 중간에 손 마이크로 단원들 이름을 부르며 동작을 지시했습니다. “○○씨, 자리를 좀 뒤로 서셔요.” “○○씨, 아까 그 표정이 더 좋았어요.”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하더군요. “왕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좋겠어요? 이렇게…하하!” 단체 수장이 세심히 지도하면 단원들이 부담스러워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연습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강 감독 스스로가 즐거워하니 단원들도 부담을 조금 내려놓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발레는 힘과 가냘픔이 함께 필요하다.” 고전 영화 ‘애수’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강 감독을 보면, 힘과 가냘픔을 함께 추구해 온 사람의 균형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균형은 역시 수없이 반복한 훈련으로 얻어진 것이겠지요.

당신이 연습 신봉자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선배 무용수였던 툰츠 셔크만이 찍은 사진이 그걸 상징합니다. 그 사진 속 ‘강수진의 발’은 관절 마디마디가 울퉁불퉁 불거지고 뼈와 근육만 도드라지게 발달한 기형이었지요. 그게 우연히 언론 매체에 보도되면서 뜻밖에 사랑을 받게 됐습니다. 이토록 노력하는 이의 발이라면 아무리 못생겨도 입을 맞추고 싶다는 팬들이 생겼지요.

물론 당신은 발레리나의 공력을 발의 모양으로만 판단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사람마다 발의 특성이 있는 데다가 요즘에는 토슈즈 품질이 좋아져서 상처를 덜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수진의 일그러진 발이 노력하는 이에게 꿈을 심어주는 상징이 되는 것은 기껍게 받아들이겠다고 했지요.

당신이 처음부터 잘나가는 무용수였던 것은 아닙니다. 19세에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해 29세 때에야 첫 주역을 맡습니다. 그 10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절치부심했을까요.

누군가 당신이 현역 시절에 연습한 시간을 계산해보니 20만 시간쯤 됐다고 하더군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최고 장인에게 수여하는 ‘카머탄체린(Kammertanzerin·궁중 무용가)’ 작위를 동양인 최초로 받은 것은, 그 20만 시간의 연습 덕분이겠지요.

카머탄체린 작위를 얻으면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서 독일권 어디서나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지난 2014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직을 수락하며 귀국한 것은, 그 특별 대우와의 작별을 뜻하는 것이었죠. 동시에 슈투트가르트 종신단원으로 평생 월급을 받는 혜택을 내려놓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각오로 돌아왔기에 한국에서 사념없이 후배 무용수를 성장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귀국 때의 초심을 지켜가는 데는 남편 툰츠 셔크만 씨의 배려가 큰 힘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수 선배였다가 남편이 된 터키인 툰츠 씨는 당신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국립발레단 무보수 코치 역할을 했지요. 지금은 직함이 없지만 여전히 발레단 리허설 등을 돕고 있다더군요. 말도, 음식도 낯선 타국 땅에 온 것은 오로지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텐데, 그 사랑이 결국 한국 발레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 그걸 고마워한다는 것은, 시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터키어를 배웠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배우느라 고생한 발레리나가 터키어까지 익히다니….

아주 드물긴 하지만, 강 감독에 대해 흠을 잡으며 뒤에서 게정 부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문화 권력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데, 자신들의 그룹에 강 감독이 속하지 않는 것이 아쉬워서이겠지요. 그들의 몽니에 신경 쓰지 말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걷겠다는 자세를 지키기를 바랍니다.

지난 2017년 연임을 한 강 감독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라고 하더군요. 그 이후에도 국립발레단을 맡아 달라는 게 팬들의 소망이긴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궁금합니다. 50세가 되던 해에 발레리나로서 현역 은퇴 무대를 펼쳤던 이가 앞으로 50년을 어떻게 다스릴지. 후배들이 그 발자국을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새 길을 부지런히 열어가리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놀라운 일의 연속”이라는 설렘을 간직하며.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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