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앞서 음주금지” 방침에
“학교 전통인데” 반박글 붙여
낙태죄 놓고 찬반논쟁하기도
‘미투’ 익명게시엔 부작용 우려
“소통·여론형성 등 매력 여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 대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 형태로 정부 정책을 비판한 ‘전대협’ 대자보(사진)를 계기로 대학가 대자보 문화가 부활하고 있다. SNS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디지털 정치의 시대지만 의견 개진, 접근성, 소통, 여론 응집력 측면에서 대자보라는 전통적인 표현 수단이 가진 위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16일 “대자보 같은 전통 매체가 갖는 고유의 매력이 있어 전자매체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희대 서울캠퍼스에 설치된 한 게시판에서는 ‘본관놀이’ 금지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오가는 학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본관놀이는 학생들이 학교 본관 앞에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친목을 도모하는 이 학교만의 문화를 뜻한다. 대자보를 읽던 이 학교 정치외교학과 2학년 정모(여·21) 씨는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문제에 대해 대자보를 보고 자세히 알게 된다”며 “학내 문제들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데는 SNS보다 대자보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언론정보학과 1학년 김지수(여·20) 씨도 “대자보에 적힌 이슈들이 내 문제처럼 피부로 느껴지면서 여론을 형성하는 힘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견 개진도 활발하다. 지난주 고려대 안암캠퍼스 게시판에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단을 둘러싼 대자보들이 다수 붙었다. 보수 대학생 단체 ‘트루스포럼’의 한 여성 회원은 ‘자식이 될 배 속 태아를 마음대로 죽이도록 해 달라는 게 여성의 인권인가?’란 대자보로 낙태 허용론을 비판했다. 반면 페미니즘 모임들은 낙태의 전면 비범죄화를 촉구하는 대자보로 맞섰다.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안중헌(23) 씨는 “SNS에 올라오는 게시물이나 댓글들은 소모적·일회적이고 휘발성이 강하지만, 대자보는 문제의 심각성을 잘 드러낼 수 있어 앞으로도 정치적 의사 표현 수단으로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로 성격을 띤 일부 대자보는 익명으로 게시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게시판에는 ‘미투(Me Too)’ 등 민감한 내용의 대자보들이 게시자 이름 없이 부착돼 있었다. 이 학교 연기과 3학년 곽다인(25) 씨는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는 익명에 기댈 필요도 있다”는 의견을 표했다. 반면 연기과 4학년 박주현(여·26) 씨는 “익명 대자보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캠퍼스라는 독특한 공간적·지리적 특성이 대자보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조재연·최지영 기자 jae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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