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제철은 봄이다. 겨울이 지나고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 바닷물 속에는 먹잇감들이 늘어나고 바지락도 통통히 살이 찐다. 국물도 여느 계절보다 더 뽀얗게 우러난다.   김선규 기자 ufokim@
바지락 제철은 봄이다. 겨울이 지나고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 바닷물 속에는 먹잇감들이 늘어나고 바지락도 통통히 살이 찐다. 국물도 여느 계절보다 더 뽀얗게 우러난다. 김선규 기자 ufokim@

식물성 플랑크톤 먹이로 성장
길이 3㎝ 이상 자란것만 채취
굴·홍합과 함께 대표 수산자원

냉이 등 봄나물과 궁합 잘맞아
미나리·부추로 전 부쳐먹기도
참나물과 무친 비빔밥도 ‘일품’

철·비타민 B12 풍부하게 함유
흡수 잘되고 빈혈 예방에 도움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까지 이어지는 충남 안면도 고남리 패총에서는 굴 다음으로 바지락 껍데기가 많이 발견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바지락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임을 말해준다. 또 바지락은 생산량도 많아 굴, 홍합과 함께 우리나라 식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수산자원이다. 일본과 유럽으로 1만t이 넘게 바지락을 수출하기도 하지만, 수요가 더 많아 4만t 가까이 수입한다. 2018년에는 생산량이 크게 늘어 5만t 넘게 생산했는데 이 가운데 자연산이 더 많다.

유생 시기를 거친 바지락은 아래로 가라앉아 밑바닥 생활을 한다. 바다 밑 식물성 플랑크톤과 유기물을 먹이로 삼아 단단한 껍데기를 키우고 점점 살을 채워 가는데 수온과 먹이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 길이가 3㎝ 이상으로 자란 것을 채취해 판다. 조개류는 껍데기가 있어 천적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두툼한 갑옷을 입은 것 같지만 고둥이나 우렁이처럼 조개를 먹이로 삼는 천적에게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천적들은 단단한 껍데기를 녹여 작은 구멍을 내고 조개를 공격해 입을 벌리게 만든다.

바지락은 백합과에 속하는데 다른 조개류와 달리 자세하게 보면 가느다란 세로줄이 부채꼴로 촘촘하게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크기가 좀 큰 바지락은 세로줄이 100개가 넘는다. 세로줄과 교차하는 가로줄 중에는 굵은 것이 쉽게 보이는데 이 띠가 바지락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추운 겨울 1∼2월에 바지락의 성장이 더뎌져 촘촘한 줄이 생기기 때문이다.

바지락은 서식 환경에 따라 색깔과 무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산 무늬, 인디언 텐트 모양, 물결 형태 등으로 각각 다르고 무늬가 거의 없는 것도 있다. 색깔이 검고 진한 것이 있고 연한 것도 있다. 바지락이 이렇게 제각각인 것은 유전적 요인이 아닌, 주변 환경 조건에 따른 개체 변이 때문이다. 바지락은 껍데기와 닿아 있는 조갯살인 외투막(外套膜)으로부터 고분자 분비물을 분비하고 여기에 탄산칼슘과 무기질 성분을 쌓이게 해 껍데기를 키워나가는데 바지락이 접하고 있는 여러 환경 조건에 따라 색깔과 무늬가 각각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해안가 어로는 어촌계 방식으로 조직화돼 있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어장을 공동으로 보호하고 관리하며 함께 인력 채취 작업을 한다. 이는 생산량을 조절하며 서식지도 보존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해안가 관광지와 인접한 곳에서는 어장에 들어오려는 사람들과 분쟁이 생기기도 하는데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마을 어장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어장에서의 인력 채취는 호미나 갈퀴로 긁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바지락 양식을 하는 곳에서는 농사에서 씨앗을 뿌리듯이 조개 형태를 갖춘 2㎝ 내외의 어린 바지락을 뿌리고 이듬해 봄부터 수확을 한다. 굴처럼 매달아 키우는 수하식 양식법도 개발됐다. 굴 껍데기나 조개 껍데기를 씨앗 바지락과 함께 그물망에 넣어서 키울 수 있다. 양식장에서 다른 생물체와 함께 키우는 방법도 개발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기온이 높아지면서 바닷물 속에는 먹이 생물이 늘어난다. 바지락은 모래 속에서 입수공을 내밀어 더 많은 바닷물을 빨아들이며 활발한 먹이 활동을 한다. 이후 바지락 속으로 들어온 식물성 플랑크톤을 아가미에서 걸러 선택적으로 섭취하며 몸을 통통하게 살찌운다. 일차 생산자인 땅바닥 식물성 플랑크톤이 만든 에너지는 먹이사슬을 통해 갯벌 생물체로 전달된다. 여름철이 돼 수온이 더 오르면 바닷물에 많아진 칼슘으로 인해 껍데기는 커지지만 조갯살은 불어나지 않는다.

살이 가장 많이 올라 있는 제철은 봄이다. 이때 구입해 해감한 후 냉동 보관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바지락도 통통하고 국물도 뽀얗게 나온다. 바지락을 구입할 때는 이미 죽어 입이 벌어져 있거나 깨진 것은 고르지 않는다. 해감은 살아 있는 조개가 먹이 활동을 하는 가운데 이물질이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므로 살고 있던 바닷물 환경에 맞춰 주는 것이 좋다. 이미 죽어 있거나 깨져 있는 조개는 골라내야 한다. 굵은 소금 35g 정도를 1ℓ 물에 녹여 농도를 맞춰 주고 큰 그릇 등으로 덮어 깜깜하게 만들면 잘된다.

봄철 채소와 잘 어울리는 바지락 요리가 많다. 살이 오른 바지락을 넣어 냉이와 달래 같은 봄나물과 함께 끓인 된장국은 재료의 조합만으로도 상승효과를 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맛이다. 청정한 갯벌이 내주는 통통한 봄 바지락 맛이 봄나물과 더 잘 어울린다. 바지락 살을 참나물과 함께 무쳐 비벼먹는 바지락비빔밥도 봄을 잘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다. 미나리나 부추에 바지락 살을 다져 넣어 봄에 느낄 수 있는 향기 가득한 전을 만들어 먹는다. 봄나물을 손질하고 바지락 살과 함께 잘 버무린 바지락 무침은 훌륭한 반찬이 된다.

속이 풀리는 것 같은 시원한 맛은 바지락탕으로 잘 느낄 수 있다. 요리법도 간단하다. 특별한 양념 없이도 바지락만으로 훌륭한 맛이 난다. 바지락을 냄비에 넣고 끓일 때 서로 부딪쳐 ‘왈그락 달그락’ 소리가 난다 해서 충남 서산에서는 바지락탕을 ‘왈그락 탕’이라 부른다. 바지락으로 인해 시원한 맛이 나는데 바지락이 쪼그라들어 질겨지므로 너무 오래 끓이지 않는다.

바지락은 어느 재료와 섞어도 잘 어울린다. 제철 바지락을 사용하면 살이 가득 차 있어 달고 쫄깃하며 식감도 좋다. 품질이 좋을 때 구입해 냉동 보관하며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부침가루와 튀김가루, 바지락 살, 오징어, 새우를 섞어 맛있는 해물전을 만든다. 뚝배기를 달궈 고추기름을 낸 뒤 물을 붓고 바지락을 넣고 끓이다 순두부를 떼어 넣고 파, 마늘, 양파로 양념해 달걀 하나를 넣어 끓여 먹는다. 바지락으로 육수를 내고 살을 이용해서 끓인 바지락죽은 피로 해소에 좋다.

냉장 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말려 두고 먹거나 소금을 섞어 젓갈로 만들어 사철 이용할 수 있었다. 조개젓은 반찬으로 이용했다. 다진 마늘,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고 식초 한 방울과 통깨를 넣어 무쳐 맛있게 먹는다. 발효 과정에서 유리아미노산이 증가하므로 단맛과 감칠맛 등 독특한 맛이 생기는데 여기에 고춧가루를 넣고 어리굴젓처럼 만들면 반찬으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시원한 맛이 일품인 바지락 칼국수는 누구나 좋아하는 한국인의 음식이다. 조개 맛을 잘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아 요리로는 봉골레 파스타가 있는데 ‘봉골레(vongole)’는 조개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쉽고 흔하지만 요리 기술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조리시간이 길어지면 바지락이 질겨져 식감이 나빠지므로 단시간에 조리한다. 바지락에는 철과 비타민 B12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빈혈 예방에 도움을 준다. 우리 몸에 철 섭취가 부족하면 헤모글로빈 합성 능력은 저하되고 그 결과 적혈구 수와 크기도 작아져 산소를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운반하지 못하게 된다.

또 비타민 B12가 결핍되면 적혈구가 커져 모세혈관에 도달하지 않아 산소가 충분하게 운반되지 못하는 악성빈혈이 나타날 수 있다. 바지락에 들어 있는 철은 식물에 있는 철에 비해 인체에 흡수되기 쉬운 형태다. 전통 된장에도 비타민 B12가 들어 있는데 동물성 식품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한국인이 자주 섭취하므로 된장국에 바지락을 함께 넣어 섭취하는 방법은 채식 중심의 식생활을 보완하는 좋은 방법이다.

신구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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