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정부가 추진하는 ‘잉여인간(剩餘人間) 일자리’ 프로젝트가 화제다. 2026년 완공되는 남서부 코슈배겐 역에 1명의 직원을 배치할 예정인데 종신직이다. 오직 출퇴근 시간만 지키면 되고 일과 중에는 무슨 일을 하든, 아예 일을 하지 않든 상관없다는 게 계약조건이다. 약 8억4000만 원으로 재단을 만들고 월급 약 264만 원을 지급, 120년 정도 후 돈이 다 떨어지면 프로젝트는 마무리된다. 프랑스 사회주의운동가 폴 라파르크가 130년 전 3시간만 일하는 사회의 재생산 가능성을 진단한 책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나 등장할 법한 일자리다.
2019년 한국의 노동시장. 스웨덴보다 무려 7년이나 앞서 ‘잉여인간 일자리’ 실험이 전국 곳곳에서 대대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1명이 아니라 32만 명 규모다. 한 해 정부 예산 8200억 원을 쏟아붓는다. 하루 2∼3시간 동안 대학 강의실 전등 끄기, 거리 청소, 독거노인 방문, 어린이집 급식 보조 정도의 일을 하니 큰 부담도 아니다.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1·2월 주 15시간 미만의 이런 초단기 근로자는 1년 전보다 32만 명 증가했다. 그런데 스웨덴 실험에서는 있고, 한국의 정책과 현실에는 없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스웨덴 프로젝트가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과 노동에 고민거리를 던져보고, 경제성장과 진보라는 현대성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위한 실험인 데 반해 한국 프로젝트는 참담한 현실을 담고 있다.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이 위협받는 시대에 대처 방안을 찾기 위해서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노동조건에 대한 철학적 고민도 없다. 오로지 가공의 일자리 수를 늘리기 위한, 실패가 예고된 실험이다. 1주일에 1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자 통계로 잡히는 허점을 교묘히 활용했다. 고용지표 악화를 숨기기 위한 눈속임이라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토대로 일자리 증가를 홍보하고 있다. 경제학도 철학도 빈곤하고, 오로지 정치 술수로만 보이게 만드는 이유다. 특히 노인에게 용돈을 주는 단기 알바 성격이라는 점이 문제다. 한 달 받는 돈은 고작 30만 원이다. 국책연구기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조차 ‘노인일자리사업이 노인가구의 경제적 생활 수준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황남희 연구위원)를 통해 이런 정부 일자리는 소득 개선이 아니라 악화만 방지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청년·3040 일자리나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는 실종 상태다. 한창 일해야 할 대상을 잉여인간 취급하는 정부 정책으로는 재생산도 안 되고 미래도 없다. 사회는 저절로 수축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 일자리 창출 전략의 핵심은 노동 유연성 보장이다. 쉬운 해고를 통해 오히려 일자리 총량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AI·로봇산업 등은 그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던 온갖 직업을 만들 태세다. 5세대(5G) 시대 개막은 대대적 변화를 촉발하는 신호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분법적 대립도 의미가 없다. 비정규직은 나쁜 일자리라는 인식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 이미 증명됐다. 직업의 이모작은 갈수록 보편화한다. 정부는 비생산적이고 유발 효과도 없는 정치 술수를 거두고 규제혁신, 노동개혁에 서둘러 나설 때다.
jup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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