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과 김원봉 의열 단장은 한국 독립운동의 양극단을 대표한다. 각각 외교독립론 대 무장투쟁론, 우익·친미 대 좌익·친북 진영으로 대비된다. ‘민족의 영웅’으로 2번의 탄핵을 당한 독재자 대 김일성의 견제로 숙청당한 비운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역사학계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해방 후 좌우분열과 분단, 동족상잔의 불행한 역사 속에 이 두 인사의 공과는 선명히 대비된다. 이는 70년간 역사·보훈 학계가 치열한 논쟁 속에서 정리해온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진보 진영이 김원봉 서훈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그 결과 분단이 해소되지 않은 안보 불안 속에 국론 분열만 극대화됐다. 광복 후 좌우분열의 혼란상을 재현한 셈이 됐다.
사건의 발단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개봉된, 김원봉이 등장하는 영화 ‘암살’을 보고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었다. 이후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MBC는 첩보극 ‘이몽’을 오는 5월 4일 반영하기로 하는 등 일종의 ‘김원봉 드라마’를 통해 김원봉 서훈 추진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3월 16일 공영방송인 KBS는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한 김용옥의 “이승만은 미국의 괴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내면서 불에 기름을 부었다. 오죽하면 현 정부 대북·안보정책에 협조적이던 재향군인회가 KBS 비판의 선봉에 나서며 규탄대회까지 열었겠는가. 김원봉은 해방 후 월북해 북한에서 국가검열상·노동상과 국가 부원수를 지냈고, 한국독립당 김구 계열을 향해 임정 해체를 요구한 인물이다. 보훈혁신위원회는 “김원봉은 북한에서도 버림받은 사람이니 재평가해야 한다”며 광복 이후 행적을 문제 삼지 말자는 억지 주장을 했고, 피우진 보훈처장은 ‘암살’의 흥행을 근거로 김원봉 국가유공자 서훈 추진 사실을 밝혔다.
북한 정권 2인자에 반(反)대한민국의 선봉에 선 인물에게 대한민국이 건국훈장 서훈을 한다면, 국가 정체성이 와르르 무너진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큰 사람에게 수여한다. 국가유공자의 공훈은 크게 ‘독립’ ‘호국’ ‘민주’로 분류된다. 아무리 독립운동 공로가 지대하다고 자유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침공한 핵심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서훈한다면 ‘호국 영웅’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그런데도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연구’ 용역보고서를 통해 남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왕재산간첩단 사건 관련자 등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민주화 관련자들을 일괄적으로 국가유공자인 민주유공자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지자 보훈처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논의를 위한 정책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보훈’은 잘하면 국민 통합과 화합의 촉진제가 될 수 있지만, 잘못 다루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불쏘시개가 돼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공정’ 과정을 지켜보면, 보훈이 이전투구의 장이 되고 목표마저 실종돼 불안하기만 하다.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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