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질문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외교 사안에 관한 물음이다. 다른 나라와 관계되는 사안일 경우에 세종은 상세하고 다각적인 질문을 던지곤 했다.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세종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고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한 다음에 추진했다.

“경들의 의견을 말해보라”는 세종의 습관적 어투는 외교실수를 막기도 했다. 명나라가 조선의 소를 대규모로 사겠다고 강요할 때가 그랬다.

1432년 봄에 세종은 무척 기뻐했다. 조선의 소 1만 마리를 만주지역에 보내라는 황제의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 조선의 로비를 받은 명나라의 관리가 황제를 설득해 그 결정을 무산시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기쁜 나머지 그 소식을 가져온 사람에게 상을 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신하들은 “조만간 중국 사신이 올 것이니, 정확한 사실을 확인한 뒤에 상을 주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 달 후에 도착한 황제의 칙지(勅旨)는 뜻밖에도 ‘소 1만 마리를 만주로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안은 결과적으로 세종의 ‘지성사대 전략’에 의해 조선의 외교적 승리로 끝났지만, 거짓 뉴스를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만약 왕이 들뜬 마음에 소식을 가져온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나중에 도착한 사실을 접하고 크게 우왕좌왕했을 것이며 자칫 국가적으로 망신을 살 수도 있었다. “어떻겠느냐”는 질문의 힘을 실감하게 하는 실록의 한 대목이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1431년 3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세종은 “전에 우리 사신이 일본에 갔을 때 사신들을 박대하였는데 이번에 보내온 외교문서도 심히 무례하다. 나는 외교문서(書契)나 회례의 물품(回贈)도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자리에 있던 맹사성은 외교문서는 보내지 말고 물품만 보내자고 대답했다. 이 말이 맘에 안 든 세종은 ‘옛날 공자가 무례한 사람을 대했던 방법’을 거론하며, “물품을 꼭 보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정초는 “그동안 여러 섬의 왜인에게도 모두 미곡을 하사하셨는데 유독 이번에만 생략하면 혹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외교문서와 물품을 모두 보낼 것을 주장했다. 대화 끝에 세종이 생각을 바꿨다. “경의 말이 옳다. 저들이 비록 무례할지라도 우리의 도리는 다하지 않을 수 없겠다”면서 외교문서와 물품을 모두 갖추어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칫 감정적 대응으로 외교 단절로 갈 뻔한 위기가 토론에 의해 극복된 것이다.

세종 정치의 요체는 이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고 당연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세종은 마치 벽에 그림을 거는 사람이 뒤에 서 있는 사람에게 위치가 바른지를 묻는 것처럼 끊임없이 의견을 구했다. 특히 복합적 국면으로 이뤄져 있는 외교 사안이나 인재선발의 경우 더욱 치밀하게 묻고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왕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 신하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신하들은 세종이 요구하는 ‘절실 강직하게 말하기’, 즉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切) 내용이라면 비록 윗사람이 싫어하는 것일지라도 강직하게(直) 말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자는 요청에 적극 부응했다.

기쁜 마음에 들떠 상을 주려 하거나, 반대로 기분이 상해 외교답례를 하지 않으려는 왕에게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그 예다. 절실 강직하게 말하는 인재들과, “내 생각이 틀렸다”며 비판을 받아들이는 지도자가 있었기에 세종 국정(國政)의 많은 그림이 바르게 걸릴 수 있었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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