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31) ‘기술혁명의 시대’의 그림자
디지털 기술 전세계 확산 불구
혁신의 과실은 소수기업 집중
‘파급은 시간문제’ 낙관론 무색
SNS로 ‘초연결사회’ 열었지만
다양성 수용·집단지성 발휘보다
포퓰리즘 시대 여는데 더 기여
자유무역·실력주의 한계 봉착
美 등 중심국, 저성장에 갇히자
주변국도 더 이상 안 받아들여
中이 ‘G2’로 단번에 도약하면서
非자유민주주의가 부상했지만
디지털권위주의, 민주주의 위협
아침에 일어나 AI에게 오늘 날씨가 어떤지 묻고 지난밤 뉴스를 듣는다. 식사하거나 독서할 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요청한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관심 있는 기사를 읽고, 잠자리에 들기 전 넷플릭스에서 원예프로를 시청한다. 필자의 하루 일과다. 디지털 비중개화(Digital Disintermediation)는 스마트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으로 구현되는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 소비자와 생산자가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사고팔 수 있게 된 것을 말한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작가는 굳이 출판사를 찾을 필요가 없다. 좋은 아이디어가 어렵지 않게 성공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개인의 생활 패턴까지 바꾼 디지털 기술혁신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가는 10년 가까이 정체되고 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은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혁명이 데이터로 반영되지 않는 생산성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 전문가들은 생산성 역설을 글로벌경제의 장기적 수요침체에서 혁신에 불리한 인구통계학적 변화(에이징), 과장된 기술혁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설로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낙관론은 기술혁명이 글로벌경제에 파급되는 시차의 존재를 든다. 기술변혁이 클수록 경제 전반에 걸쳐 산업과 기업에 수용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술혁명이 그 결실을 맺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낙관론이 정말 낙관적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지식으로서 디지털 기술은 얼마든지 공유 가능하기 때문에 디지털 혁신은 손쉽게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사이언스 저널에 나오는 기초연구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많은 돈을 투자해 연구·개발한 지적재산이다. 지난주 애플이 퀄컴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2년여에 걸친 법적 다툼을 끝낸 것이 하나의 예다.
대신 혁신을 주도하는 소수 기업에 의해 뒤처진 다수 기업은 밀려났다. 25년 전 온라인 서점에서 출발한 아마존은 130년 전통의 시어즈를 비롯한 유통기업들을 몰락시켰다. 21세기 국제무역의 패턴으로 자리 잡은 글로벌가치사슬(GVC)은 국제교역을 보다 지식집약적으로 전환했고 그만큼 글로벌경제는 디지털 기술에 더 의존하게 됐다.
디지털 기술혁명은 산업 각 분야에서 소수 기술 기업의 지대추구행위를 초래했다. 그것은 노동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신(新)노동이 다수의 구(舊)노동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김경수의 글로벌경제이야기 30).
낙관론은 정체된 생산성 증가가 기술혁명의 과실이 소수 기업과 노동에 집중된 데 따른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글로벌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가. 세상의 이치가 경로의존적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 시차는 매우 길 수 있다.
#2. 인터넷은 사회 구성원들이 유용한 정보와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열린 초연결사회를 구축함으로써 민주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당초 기대됐다. 소셜미디어는 초연결사회를 만드는 데 성공은 했으나 디지털 민주화는 실패했다. 실패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틀린 생각이었다.
사용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진지한 토론을 통해 컨센서스를 찾아감으로써 집단지성을 이끌어 내도록 소셜미디어를 디자인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수요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만 선택할 수 있는 디지털 비중개화의 역기능 때문이다.
대신 이슈에 관해 사안의 복잡성을 따지지 않은 채 옳고 그름으로 가르고, 자신의 생각과 같은 사용자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 믿음을 공고히 하고, 자신을 숨긴 채 자신과 동조하는 사용자들에 편승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매도하는 장(場)이 됐다. 뉴스가 자신의 믿음에 힘을 실어준다고 판단되면 그 진위를 살피지 않고 퍼 날랐다. 그것은 소셜미디어 기업이 돈을 버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막을 수도 없다.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을 기업들이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문은 백신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안티백신은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됐다. 다시 안티백신은 왓츠앱을 통해 인도 전역으로 확산됐다. 소셜미디어가 가짜 뉴스의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혁명이 가져온 불편한 진실-한 줌의 승자가 엄청나게 챙겨가는-은 포퓰리즘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포퓰리즘은 그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 딱히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엘리트와 외국 세력으로부터 좌절당한 보통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 공통적으로 작용한다.
이제 포퓰리즘은 더 이상 글로벌 경제 주변부 국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중심부 국가에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포퓰리즘의 대승리는 세계 정치지형을 바꿔 놓았다. 3월 포퓰리스트 후보가 패배한 슬로바키아 대선이 빅 뉴스가 될 정도다.
칠레 출신의 경제학자 세바스티안 에드워드는 미국 등 선진국의 신 포퓰리즘과 중남미 국가들의 구 포퓰리즘을 비교해 확장적 재정정책, 자국 산업 보호, 기존 제도에 대한 폄하 등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을 밝혔다. 그는 중남미 포퓰리즘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언제나 나쁘게 끝났으며,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구는 포퓰리즘 실험이 시작됐을 때보다 더 악화됐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사회 정치적 변화는 낙관론의 시차가 단지 기술적인 문제 이상의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질서에 기반한 자본주의는 20세기의 가장 큰 정치적 사건으로 기억될 사회주의 체제와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냉전시대를 종식했다. 이후 자유주의(또는 신자유주의) 이념은 한 나라 경제발전의 틀이 됐으며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그 절정기를 맞았다. 글로벌경제의 기본 골격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두 요소인 자유무역과 실력주의(Meritocracy)는 글로벌경제의 중심국 미국의 명암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수입품이 쏟아져 들어와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조업이 밀집한 러스트 벨트가 전국으로 확대된 한편, 거대 기술기업이 탄생해 전 세계 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거기서 멈췄다. 중심국의 분배가 악화되고 저성장에 갇히자 주변국들이 더 이상 성장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대신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EU 회원국이기도 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재선에 성공한 2014년 연설에서 ‘비자유주의 국가가 미래의 헝가리이며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을 거부하지는 않되 자유주의 이념을 국가 조직의 핵심 요소로 삼지는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는 싱가포르, 중국과 같은 성공한 국가가 자유주의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았으며 이들 나라를 모두 민주국가로 볼 수도 없다고 자신의 발언에 대한 근거를 들었다.
중국은 대침체기에 선진국들이 허우적댈 때 단번에 주요 2개국(G2)으로 도약했다. 분명히 중국의 성공은 후발국에 경제성장에 대한 새로운 롤 모델을 제시했다. 과연 중국의 미래는 어떠한가. 15년의 연구 끝에 출간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들-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비관적이다. 중국의 현 정치 경제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엘리트들은 자신의 이해에 상충되는 절대다수를 위한 혁신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중국의 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반대의 시각도 있다. 의학자 출신의 니컬러스 라이트는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가 자유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작년 포린어페어 기고문에서 그는 정부가 과거 어느 때보다 효과적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AI는 권위주의 국가들에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대안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의 퇴조는 글로벌경제에 자국우선주의를 퍼뜨렸으며 근린궁핍화는 교역성장이 정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이 디지털 기술혁명이 자유주의 자체를 위협한다면 낙관론의 시차는 결코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중앙은행도 미 Fed의 위상에 견줄 수는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Fed는 세계의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해 국제금융질서를 지켰다. 주요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14개국 중앙은행에 스와프라인을 제공한 것이다. 과연 앞으로도 Fed가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만큼 글로벌경제는 위험해졌다.
낙관론이 제기하는 시차의 문제가 쉽게 극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돌이켜 보면 글로벌경제의 성장랠리는 대침체-정체된 생산성과 저성장-동안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수 있다. 시차의 문제는 경제 그 자체보다는 경제를 움직이는 정치와 정치를 움직이는 사회가 자유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데 연유한다. 그 결과 윌리엄 보멀의 점근적 정체-혁신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경제성장이 정체된 상태-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사이먼 쿠퍼는 포퓰리즘 시대에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FT, 가디언 등 주류 언론은 오히려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기고했다. 대부분 사람이 진실보다 자신의 정치적 선호와 오락물을 더 우선시하는 시대에 여전히 진실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작지만 희망을 가질 내용이다.
지난 2년에 걸쳐 지면을 할애해 준 문화일보와 보잘것없는 글을 읽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끝> (문화일보 4월 3일자 23면 30 회 참조)
성균관대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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