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서울 종로구 삼청로 서울관 집무실 창가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현장인 인왕산을 볼 때마다 임기 중 우리 시대의 ‘진경정신’을 선보이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서울 종로구 삼청로 서울관 집무실 창가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현장인 인왕산을 볼 때마다 임기 중 우리 시대의 ‘진경정신’을 선보이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취임 3개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미술 시대·장르 범주화
키워드 맞춰 전시출판 계획

부귀·다산 기원 서민들 민화
가장 경쟁력 있는 미술 분야

남북 미술교류 TF꾸려 준비
국내작가 해외진출 도울 것”

전시기획·비평가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미술에 천착


“서양미술 범람시대에 우리 미술의 진면목과 만나고자 많은 세월을 보냈다.”

윤범모(68)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지난 2017년 펴낸 책 한국미술론(칼라박스) 머리말에 쓴 첫 문장이다. 이 책은 근현대 미술뿐 아니라 고구려 고분벽화, 민화, 불화 등 한국미술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쓴 원고를 모아 엮은 것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취임(2월 1일) 3개월을 앞두고 있다. 그는 취임 당시 일성으로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를 내세웠다. 이는 한국미술론의 ‘시작 문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40대 초반 교단에 서기 전 그는 전시기획자로, 비평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면서 계속 그가 ‘한 우물’처럼 파 온 것이 한국미술이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에 천착하며 민중미술 분야와도 깊이 교류해왔다.

한국의 대표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수장으로서 그는 자신의 계획을 예상대로 실천해가고 있을까. 봄볕이 따사로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윤 관장을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이 ‘4관’ 체제여서 규모가 방대해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죠. 여태껏 안 하던 일을 지금 한꺼번에 다 묶어서 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술도 요즘은 마시기 힘들어요. 공무원 생활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알았다면….(웃음)”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 3관 체제에서 윤 관장이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27일 청주관이 개관하며 4관 체제가 됐다.

취임 후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일에 과부하가 걸리는 일이 잦아요. 2013년 서울관 개관 이후에 더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법인화를 추진하며 정규직보다 전문임기제 중심으로 채용하다 보니 빚어진 현상 같습니다. 임기제라는 것도 문제예요. 전시기획은 최소한 2∼3년 단위의 긴 호흡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는 정부 조직체계에 갇힌 미술관 조직을 일신하고 민간 영역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끌어들인다는 취지에서 10여 년 전 시작됐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법인화 검토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국공립미술관이 지닌 공통 문제인데 관장이나 학예실 큐레이터가 임기제이다 보니 ‘파리 목숨’이란 자조적인 표현까지 등장했어요. 학예사 등 장기적으로 전문가를 양성해야 말 그대로 대한민국 미술문화의 품격을 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런 문제는 미술관 내부의 의지로 해결될 수 없어요. 조직 개편이나 예산 문제는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국회 등 주요 정부 부처 등을 쫓아다녀야 해요.”

그러나 조직, 예산 문제도 미술관 관장의 업무이지만 전시의 큰 방향을 잡아가는 것도 주요 업무다. 윤 관장은 취임하기 전 미술사가이며 전시기획자, 대학교수로 유명했다. 향후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방향이 궁금했다.

일각에서는 전임 관장이 외국인이어서 한국미술의 깊은 이해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그만큼 근대미술 전문가인 윤 관장이 한국적 추상화인 ‘단색화’ 등장 이후 잊혀온 근대미술을 우리 미술사에 다시 복원하리라는 믿음이 크다.

“우리 한국미술을 시대별, 장르별로 범주를 설정하고 그 영역에 맞는 키워드를 뽑아낸 후 그에 맞는 전시 출판을 할 생각입니다. 그 같은 연구 과정을 거친 후 장기적으로 과천관과 서울관에 우리 근현대미술 상설전시실도 만들어 운영할 예정입니다.”

최근 ‘단색화’ 이후 새롭게 조명받을 것으로 보이는 ‘민중미술’에 대한 그의 생각도 궁금했다.

“1980년대 ‘민중미술’로 일컬어지는 우리 미술운동의 특징은 전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그동안 미술운동이 미술계 내부에서의 일이었다면 1980년대의 민중미술 운동은 시민사회와 함께한, 아주 독특한 운동입니다. 국제무대에서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크게 조명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기간이 짧아 작품은 많지 않지만 최근 해외 미술시장에서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우리 미술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민화로까지 이어진다. 먹을 주로 사용한 선비들의 문인화와 달리 여러 색상의 물감을 사용해 그린 민화는 궁중회화에서 출발해 조선 시대 말(18∼19세기) 크게 발전했다. 민화라는 단어는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1929년 교토(京都) 민예품 전람회에서 ‘민속적 회화’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하며 정착했다.

“우리 미술 중 민화 역시 경쟁력이 높은데요. 우선 민화라는 표현부터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민화를 통해 서민들은 부귀와 다산을 기원했습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 재앙과 질병을 막아주는 호랑이, 다산을 기원하는 잉어와 연꽃, 부귀의 상징인 모란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민화에서 ‘민’은 백성 민(民)자인데 이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운이 좋고 복되고 좋은 일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길상(吉祥)’을 써서 ‘길상화’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윤 관장은 취임 초기에 “분단 극복, 남북 화해 시대에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미술과 미술관이 일정 부분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인지 궁금했다.

“남북 교류는 정치 상황이 연계돼 있어 저희 의지대로만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준비는 할 수 있죠. 미술관 대내외의 북한 전문가들을 ‘태스크포스’ 형태로 모아 연구사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1차적으로 ‘아카이브’ 작업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첫걸음마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비록 준비 과정이지만 윤 관장의 남북 미술 교류에 대한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해방 이후 북한 미술은 전부 ‘조선화’라는 장르를 주종으로 삼다시피 했죠. 원색이고 선명, 경쾌, 명랑한 분위기에 여백을 무시하고 사실주의적으로 그렸습니다. 남쪽의 추상미술은 인정하지 않았고요. 그러나 그 같은 차이점은 빈번한 접촉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사회 체제가 달랐으니 거기에 맞는 미술이 만들어졌겠지만 한민족이라는 DNA가 달라지겠습니까. 특히 요즘 북한 미술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소재부터 일상생활의 평범한 내용을 담는 등 나름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미술관 격에 걸맞게 세계적인 미술관들과 네트워크를 조성해 연구·출판·전시 등을 해야 한다. 이는 한국미술이 ‘우물 안 개구리’가 안 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저는 이 대목에서 미술관의 경쟁력을 생각합니다. 미술관은 우리 미술의 해외 수출을 위해서라도 출판·전시·연구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무대에서 1급 미술관들과 협업체제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미술이 해외에 진출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항상 제가 하는 말이 있는데요. 자동차 몇 천 대 팔아야 수천억 원씩 하는 피카소 그림 한 장이라도 사 오겠느냐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미술관이 돈벌이하는 곳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에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도 업무나 전시에 디지털 기능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와 관련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다.

“일단 전시 아이템에도 적극 반영하고 있습니다. 요즘 진행 중인 ‘불온한 데이터’를 타이틀로 한 전시의 경우 작가 10명 정도의 작품 14점을 선보이는데 예술가들의 손에서 빅데이터와 블록체인, 인공지능 등 공공재 기능을 띤 데이터가 미적 가치를 지닌 창의적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관람객들의 작품 감상에도 디지털 기능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비콘 시스템이라고 해서 전시장 내에서 작품을 인지해 스마트폰으로 설명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입니다.”

윤 관장은 취임 초기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웃집 같은 미술관’ 얘기를 종종 했다. 이는 미술관 전반의 운영에 관한 것이어서 중요한 대목으로 여겨졌다.

“젊어서 인상적인 사진 하나를 봤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같은 큰 대형 전시장에 적막하게 작품만 진열돼 있는 장면과 묘비가 즐비하게 늘어선 공동묘지 장면을 나란히 편집한 사진이에요. ‘미술관’은 ‘시각자료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사진이었죠. 그만큼 미술관은 너무 고답적이고 재미가 없는 장소라는 얘기죠. 어린이 미술관을 활성화하고, 전시 아이템도 ‘이발소 그림’처럼 미술관에 전시되지 않았던 아이템을 ‘이것도 미술이야’ 하며 전시하는 파격도 생각해 볼 수 있죠. 어쨌든 미술관의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윤 관장에게 마지막으로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서울관 집무실 창가로 보이는 인왕산을 가리켰다.

“미술관 근무시간에 낙이 있다면 인왕산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창가로 보이는 인왕산이 바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현장이 된 곳입니다. 인왕제색도는 18세기 새로운 미술사조의 중요한 작가인 겸재가 진경(眞景) 정신을 강조한 대표적 작품이죠. 그러면서 든 생각이 21세기의 진경은 과연 무엇이고 현대판 인왕제색도는 어떤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제 임기 중 우리의 진짜 풍경, ‘진경’을 담아내는 진경정신을 선이라도 한번 보이고 싶습니다.”

이경택 기자 k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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