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광장(廣場)을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광장의 효시인 고대 그리스 아고라에서는 시민들의 종교·정치·사법·상업적 토론과 사교가 이뤄졌다. 로마 시대에는 포럼(forum)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사법광장, 상업광장 등으로 세분화됐다. 중세 도시의 광장은 대성당이나 교회 앞에 조성됐다. 르네상스 이후에 조각이나 기념물, 분수 등으로 장식된 시민의 광장이 등장하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엔 광장이 쇠퇴한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공장과 사무실, 철도 등 산업 시설이 도시의 중심이 됐다. 사람 대신 자동차가 거리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시민 사회의 세력이 커지면서 광장도 다시 사람 중심으로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재개발되는 도심과 주택지 등에도 광장이 들어서면서 공적 토론보다 산책 등 사적 휴식의 역할이 강조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1960년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발표된 이후 광장은 공간보다는 관념적 개념으로 많이 바뀌었다. 개인적·실존적 삶을 상징하는 ‘밀실’에 대비되는 집단적·사회적 삶을 의미했다. 그런 영향인 듯 광장은 선거 유세와 시위 등 정치적 공간으로 굳어졌으나, 2002년 월드컵 응원을 계기로 국민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서 역할도 새롭게 부각됐다.
서울의 대표적 광장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세종대로의 광화문광장.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이 각각 조성했지만, 두 광장은 지난 10년간 진보·좌파 진영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광화문 광장은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유가족 등이 농성하는 천막이 들어섰고,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주 무대가 됐다. 보수 세력은 광장에서 소외돼왔다. 진보·좌파는 물론 심지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위인으로 칭송하는 친북·종북 세력도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었지만,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 부대 등 보수 세력의 시위대는 두 광장에서 떨어진 서울역과 대한문 등으로 밀렸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20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지난 2005년 한나라당이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를 주장하며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이후 10여 년 만의 장외 투쟁이다. 보수 세력이 빼앗긴 광장을 다시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다. 보수와 진보가 광장에서 맞붙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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