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3월 국내 최초 대형 충무공 동상 제작을 완료한 해군 조함창 대원들이 찍은 기념사진. 원 안이 이진수 씨. 사진 오른쪽에 ‘해군공창 주조공장 일동’, 왼쪽에 ‘임진 삼월 대충무공 건립기념’ 글자가 새겨졌다.   해군 제공
1952년 3월 국내 최초 대형 충무공 동상 제작을 완료한 해군 조함창 대원들이 찍은 기념사진. 원 안이 이진수 씨. 사진 오른쪽에 ‘해군공창 주조공장 일동’, 왼쪽에 ‘임진 삼월 대충무공 건립기념’ 글자가 새겨졌다. 해군 제공

20여년 조함창 근무 이진수 씨
1951년 동상 제작 공로 인정받아
67년 만에 해군 감사패 받아


“6·25전쟁 중 우리 손으로 만든 충무공 동상이 진해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오는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 474주년을 나흘 앞두고 국내 최초의 이순신 장군 제작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67년 만에 해군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이진수(95·사진) 씨는 24일 “6·25전쟁 당시 국내에서 4m가 넘는 대형 동상을 만들 수 있는 곳은 해군 조함창뿐이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씨는 “저를 포함해 10여 명 대원이 4개월 이상 주형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동상을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1951년 11월 제작에 착수해 1952년 4월 13일 제막된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북원로터리 충무공 동상은 당시 국내에서 가장 앞선 주물 기술을 보유한 해군 조함창(현 해군 정비창)이 만든 동상으로, 광화문 충무공 동상 제작보다 16년 빨랐다. 높이 482㎝, 너비 140㎝로 제작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으며, 대형 충무공 동상의 효시이기도 했다. 이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호로 지정됐고, 여기서 시작된 이 충무공 추모제는 1963년부터 문화축제인 군항제로 변경돼 전국 최대 규모 지역문화관광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 씨는 1949년 해군 조함창에 주물 군속(현 군무원)으로 임용된 뒤 20여 년간 조함창을 지킨 해군 정비분야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해군 재직 기간 손원일 초대 해군 참모총장에게 받은 표창장을 비롯해 20개가 넘는 표창과 상장을 받았을 정도다. 이 씨는 “1950년 11월 해군 내부에서 국난극복의 염원을 담아 이순신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가 시작된 뒤 마산시장을 중심으로 동상건립기성회가 결성됐고, 어려운 여건 속에 장병들과 국민이 보내준 놋그릇 등 기부품과 성금으로 제작됐다”며 “당시 대규모 동상을 제작할 능력이 있던 유일한 기관은 해군 조함창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의 차남으로 25년째 해군 군수사 정비창에서 근무해온 이치관(58) 주무관은 “아버지는 해군과 정비창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항상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고 동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다”고 소개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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